1951년의 어느 날 멤피스에 사는 윌슨이라는 사나이가 가족을 이끌고 워싱턴으로 휴가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형편없는 숙박시설 때문에 여행이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윌슨 가족의 기분을 망쳐놓은 모텔은 방 하나에 하루 숙박비가 6달러인데다, 어린이가 다섯 명이니까 어린이 한 명에 2달러씩 추가해서 16달러가 된다는 식의 계산법을 적용하는 곳이었다. 또한 숙소 내에 식당도 없어서 끼니때마다 한참 떨어진 곳까지 식당을 찾아가야 했다. 특히 비가 올 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억지로 참으며 여행을 마쳤다.
그 무렵 미국인들은 여행할 때마다 ‘숙박시설이 어떻게 이렇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분노하곤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쉽게 잊어버렸다. 그러나 이 비범한 사나이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 전역에 어느 한 곳 쓸만한 숙박시설이 없다는 사실은 그에겐 훌륭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갑자기 그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 수천수만 가지 영상이 스쳐갔다. 멤피스, 워싱턴, 뉴욕, 시카고, 그리고 LA에 가서 호텔을 짓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그 호텔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기분 좋게 묵어가는 사람들의 미소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누구나 안심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현대적인 서민용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윌슨은 아내에게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 꼭 호텔 체인 사업을 시작합시다”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름만 들어도 안심하고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그런 호텔을 지읍시다.” 그는 ‘400개의 호텔을 짓겠다’는 결심을 밝혔지만 그의 아내는 그저 웃기만 했다. 400개나 되는 호텔 체인이라니, 정말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몬스 윌슨(Kemmons Wilson)은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호텔 설계를 도와줄 설계사를 고용했다. 윌슨의 머릿속에 있는 호텔은 청결하고, 단아하고, 언제나 한결같은 곳이었다. 그가 그린 설계도에 따르면, 그 호텔엔 그가 워싱턴의 모텔에서 아쉬워했던 수영장도 있고 방마다 TV도 놓여 있었다. 당시로선 그런 호텔은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온갖 시련을 딛고, 마침내 윌슨은 다음 해 멤피스 교외에 첫 번째 호텔의 문을 열었다. 16미터 높이의 옥상에 설치된 네온사인 간판엔 ‘홀리데이 인(Holiday Inn)’이라는 글자가 일대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윌슨이 400개의 ‘홀리데이 인’ 호텔을 짓는 데는 예상했던 것보다 다소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59년까지 그는 100개의 호텔을 짓고 직영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체인 운영 방식을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전환하자 그 숫자는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1964년에는 500개, 1968년에는 1,000개를 돌파했고 1972년부터는 전 세계에 72시간마다 하나씩 새로운 홀리데이 인 호텔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한 확장추세는 1979년 그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400개의 호텔을 짓겠다’고 말한 순간 ‘홀리데이 인’이라는 브랜드의 내일이 시작된 것이다.
- 출처: [가슴 뛰는 삶] 강준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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