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꿈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모두가 간직하지는 않습니다. DreamCOSMOS는 자신의 소중한 꿈을 발견하고 이루어 가는 공간입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여러분들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우리 가슴에 품은 그 꿈을 함께 이뤄가시죠!"
역사가 7만년이나 되는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보(Bo)라고 불리는 언어인데 이 언어는 더이상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 언어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생존자인 보아 스르 할머니가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 보아 스르 할머니 생전 모습 (Source: VOGA homepage)
신문에서 기사를 처음 접하고, 우리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것들은 참으로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멸종 동식물도 지켜야 되고, 사라져 가는 문화재, 그리고 이토록 오랜 역사를 지닌 언어도 지켰어야 하는데 말이죠.
할머니는 혼자만 알고 있는 언어를 쓸 수 없어 보 언어로 대화를 나눌 이가 없어 고독감을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힌두어를 새로 배우고 익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 언어는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7만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역사를 지닌 언어가 사라져 버린 것이죠. 그리고 작게 해외토픽처럼 이슈가 되었지만 곧 우리의 기억과 기록에서 보(Bo)라는 언어는 곧 사라질 것입니다. 복구를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알고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아무도 없기에 이제는 그 언어의 타당성을 검증해 줄
이도 사라진 셈이니 말이죠.
우리의 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의 무관심 속에 무뎌지고, 무뎌져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지고 있지는 않을까요? 시간이 흐르고 흘러 꿈을 복구해보려 할 때 이제는 너무 먼 기억 저편에 남아 있는 혼자만의 메아리로만 남지는 않을까요?
그런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까요? 저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렇게 기억의 불씨를 살리고, 내가 스스로 제 꿈을 되새기고 또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보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낍니다.
보아 스르 할머니도 보 언어를 나눌 이가 전 세계에 한 명만 더 있었다면 즐거운 대화를 밤새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오늘은 주변 사람들과 즐거운 꿈 이야기를 이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영원성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저의 큰 누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입니다. 제가 군생활 하던 어느 해 6월 말 약 40통 가량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3학년을 가르치던 누님의 반 아이들과 옆반 아이들이 6.25를 맞아(?) 국군 아저씨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던 것 입니다. 딱히 아는 국군이 없던 저희 누님은 저의 군부대 주소를 모두에게 알려주고 편지를 쓰게 했던 것 이였죠. 하나 하나 답장 쓰느라 답장을 모두 쓰는데 보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
대부분의 글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ooo 국군 아저씨께...' 편지의 내용들은 정말 재밌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외로운 국군 아저씨를 위해 자신의 이쁜 이모를 소개 시켜 주겠다는 아이도 있었고, 어떤 편지는 배고플 때 먹으라고 사탕을 붙여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또 어떤 편지는 300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배고플 때 쵸코파이 사먹으라고 넣어 준 것 이였습니다. 자신의 용돈을 포기하고 국군아저씨를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한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참 착하고 속이 깊죠? ^^
그 중에 제 관심이 유독 끄는 한 남자 아이의 편지가 있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 안녕하세요 ooo국군 아저씨 저는 ooo 초등학교 3학년 2반 ooo에요. 저는 달리기를 좋아해요, 저는 커서 달리기 선수가 될 거에요. 달리면 기분이 좋아져요. 달리면 걱정도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엄마랑 선생님은 변호사 되라고 하세요. 저는 달리는 게 좋은데 말이에요. ooo국군아저씨도 달리기 좋아하세요? ooo올림"
인사만 하고 바로 자기 얘기만 하고 끝나는 그런 편지였습니다. 하지만 전 글씨도 크고 짧은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그 날 누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아이 때문이었죠. '옆 반 아이의 편지 같다... 그 반 선생님이 나이가 많으셔서...' 전화를 끊고 저는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그 아이의 부모님께 아이에게 '부모님의 꿈을 강요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냅니다.
제가 그 편지에서 받은 느낌은 짧은 글 이지만, 이 아이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기 얘기를 쓴다는 것이 그 생각을 들게 하였습니다. 아무한테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환경이 저에겐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쳐지지 않을까에 대한 부담감에 아이들이 뛰 놀 시간도 없이 학교를 마치면 바로 영어학원으로 가고, 집에서 또 문제집 풀이를 하며 하루를 마감합니다. 이 아이들이 어른들 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과연 이 아이들이 여유를 알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까요?
우리나라 에서는 나이별 호칭이 있는데요. 그 중 15세 지학(志學) - 15세가 되어야 학문에 뜻을 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15세 이전의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 놀고,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그 나이에 적합한 것 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초등학교시절을 정말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1000호(戶)도 안되는 조그만 마을에서 자연을 벗삼아 동네아이들과 뛰놀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냈습니다.
점심식사후 5, 6교시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제일먼저 저를 반겨주신 분은 어머니였습니다. 두 팔을 벌려 어머니께 안기면, 어머니는 저를 꼭 껴안아 주시며 항상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들었니? / 네~!
오늘 수업시간에 뭐 배웠니? / !@#$%^&*요. 저 오늘 칭찬받았어요!^^
우리아들 장하구나, 우리아들 최고요~~~
이렇게 말씀하시며 안아주시고 업어도 주시던 어머니의 숨결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교육방법은 그 어떤 교육기관이나 학원과외보다 탁월했던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모든 얘기에 관심있게 귀를 기울여 주셨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칭찬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칭찬과 어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이 좋아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어느덧 조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예나지금이나 어린아이들은 착하고 순수하다는 것을 저는 조카들을 보며 느낍니다.
하지만 조카들의 생활은 제 어린시절의 그것과는 너무도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어머니께서 반겨주셨지만, 조카들은 학원차가 반길 뿐입니다. 저는 자연이 놀이터였지만, 조카들은 컴퓨터와 닌텐도 게임기가 놀이터입니다. 저는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게 너무도 많았지만, 조카들은 공부좀 그만하고 충분한 잠을 자는 것을 원할 뿐입니다. 저는 꿈이 너무도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었지만, 조카들은 명문대 입학과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 꿈이랍니다.
'바람의 딸' 한비야씨가 한 초등학교 학생으로부터 온 이메일을 소개했습니다.
비야누나, 반장되면 유엔사무총장하는데 유리한거 맞죠?
누가 우리 아이들의 꿈을 빼앗았을까요? 물론 누굴 탓할 수도 없고 한탄할 수만도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어릴적부터 동네에서 조그마한 슈퍼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늘 같은 자리에 계실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시대는 정작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어머니를 빼앗아간 기분입니다. 비록 생물학적인 어머니는 계실지 몰라도 아이의 꿈과 미래에 진정으로 관심가져줄 여유가 있는 어머니, 나아가 어른들은 정말 드문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지금 아이들은 저 어렸을때보다 훨씬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꿈에 귀를 기울여줄 어른들은 훨씬 줄어든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의 꿈은 우리 가족, 우리 동네, 나아가 우리 대한민국의 꿈입니다. 비록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있는 시간만큼은 내 목소리가 아니라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이들의 꿈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들이 신이 나서 자신의 꿈을 이뤄갈 수 있게 하는 시작입니다.
네, 저도 그이야기 들으며 재미있었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수 없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아이가 훗날 유엔이라는 기관에서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사무총장을 하고자 한다면 모를까, 단순히 매스미디어에서 꾸며진 이미지에 의해 그것을 하고자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어떤 직업이 좋다가 아니라, 그 일을 하면 아이의 꿈을 어떻게 펼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날마다 사진을 찍는 나는 날마다 사진을 생각합니다. 사진 찍는 일에 몰입해 홀로 지내는 동안, 그리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내 존재가 잊혀질지라도 나의 사진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故김영갑 선생님 인터뷰 中>
저는 올 여름 휴가를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제주도라는 섬이 저에겐 너무 크게 다가왔습니다. 여행 중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을 통해 사진작가 故 김영갑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1982년 처음 제주도에 내려와 제주에 반해 사람 하나 없는 제주 내려와 꼬박 20년을 살았습니다. 제주도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며 20여 년간 사진작업에 몰두하던 그는 루게릭 병에 걸리고 맙니다.
그는 땡전 한 푼 없이 제주에 내려와 들판을 거닐다 밭에 떨어진 당근을 씹어먹고, 라면이 떨어지면 냉수 한 사발로 배를 채우면서 제주와 사랑에 빠졌고, 끼니는 걸러도 인화지와 필름 없이 살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한 컷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라면 한끼가 보장되지만 그는 지체 없이 셔터를 눌러댔고. 밥을 굶어가면서 20만장의 필름으로 사진과 함께 했던 그는, 정작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됐을 때 절망감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끼니를 거르고, '미친놈' 소리를 들어가며, 루게릭 병에 걸려가면서 까지 그를 움직이게 했던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랑하는 제주를 사진에 담고 싶은 그 꿈이 아니었을까요?
내 자신에게 소리쳐 봅니다.
'미친놈' 소리를 참아가며 현재의 일을 해 낼 수 있는가?
지금 하는 일을 정말 사랑하는가?
지금 일이 내게 정말 소중하고, 애절한가?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서 '김명민'씨는 몸이 조금씩 마비되어 가는 '루게릭 환자'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 냅니다. 연기를 위해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내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참아낸 그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루게릭 병에 관해 그동안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여전히 명확한 발병원인을 밝혀내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비교적 지속적인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발병할 확률이 높다는 정도만 추정하고 있는데요, 유전적인 요인은 10%미만이라 하니 90%가량은 후천적으로 발병되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이와 비슷한 수치로 각종 사고나 질병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후천적 장애우(友)'가 전체의 90%라는 KBS 보도자료가 있었습니다(2003/03/05). 이들은 누구보다 건강했으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팔다리를 못 쓰게 되거나 앞을 못보게 되거나 듣지 못하게 되니 그 고통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이중 '청력상실(에 의한) 언어 구음장애(speech articulation impairment (due to) hearing loss)'라는 것이 있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것처럼 청력을 잃게된 후 말을 못하게 되는 장애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청각 상실'후 '실어증'이 오고 '신경성 발성장애'로 발전되어 '호흡, 성대, 후두, 구개, 혀, 입술 상의 구음장애'를 겪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의학적인 해석이야 그렇지만, 결국은 듣지 못하니까 말하는 것도 퇴화 되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이 처음부터 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이를 장애라고 규정 짓습니다. 단지 듣지 못하게 된것인데 이로 인해 말도 못하게 될 정도로 우리 몸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장애라고 규정짓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를 안고 살아갑니다. 아니 나이가 들면서 그 장애가 발생하는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면의 소리(꿈)를 듣지 못하는 장애입니다.
어렸을 때는 대부분 자기 내면의 소리에 충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부터 외부의 소음(?)에 의존하게 됩니다. 마치 그것이 자기의 길인양, 자기가 꼭 해야되는 일인양 그렇게 우리는 외부의 소음에 익숙해져 갑니다. 분명 내면의 소리는 계속 말을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감각이 퇴화하게 됩니다.
결국 어느 순간 자기 내면의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 본인이 정말 하고자 하는 것을 생각해 낼 수도 표현해 낼 수도 없는 장애를 겪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꿈을 잃은 어른들이 겪고 있는 장애입니다.
빌게이츠같은 사람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꿈을 이룬 사람들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는 귀가 잘 발달해 있습니다. 저 옛날 맹자는 '큰 인물은 어린아이같은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라고도 했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의 꿈은 자나깨나 어릴때나 나이들어서나 늘 속삭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꿈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청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히 내면의 소리를 표현해 내는 감각도 마비될 것입니다.
앞을 보지 못했던 헬렌켈러(Helen Adams Keller)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시력은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쌍하다.
그런데 저는 '청력은 있지만 내면의 꿈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엾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라도 조금씩 내면의 소리, 그 꿈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작은 실천(micro-movement)이 그 시작이 아닌가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반응하면 신이나서 더 잘하듯이 우리 내면의 소리도 잘 들어주고 아무리 조그마한 일이라도 실천한다면 내면의 소리가 신이나서 점점 더 크게 말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무시하다보면 포스트 내용처럼 어느순간엔 잘 안들리겠지만요...
답이 늦어 죄송합니다~ 스타일스타일님, 남은 명절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나는 즉시 국왕에게로 불려갔다. 국왕은 나를 정중하게 맞으며 앉으라고 했다. 그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잠시 찬찬히 살펴보고는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정부 구성을 맡기고 싶소.'
나는 물론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
새벽 3시경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나는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마침내 나는 전체 상황을 감독할 권한을 얻게 되었다.나는 마치 내가 운명의 여신과 함께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나의 지난 모든 삶이 오로지 이 시간과 이 시험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
지난 6년에 걸친 나의 경고는 너무 잦고,너무 구체적인데다,이제는 현실로 너무도 분명하게 입증되어서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나는 전쟁을 일으켰다고 혹은 전쟁준비를 소홀히 했다고 비난받지 않을 것이었다.나는 그 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실패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비록 조바심이 나서 아침을 못 기다릴 정도였지만,나는 푹 잤고 좋은 꿈을 꿀 필요도 없었다.현실이 꿈보다 더 나았기 때문이다.
- 윈스턴 처칠(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의 회고록 중에서...
Victory를 만들어낸 사람
히틀러의 나치 군대에 의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다면 아마 아무리 강심장이더라도 국가가 직면한 위험 앞에 불안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나라의 수장이라면, 그러한 위기 상황에 부담을 느끼고 사태를 변화시킬 자신의 능력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윈스턴 처칠 경은 '영국의 승리'라는 꿈을 가슴에 품었고 이를 실현시킬 모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회고록에서 밝혔듯이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갖게된 날, 오히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분을 느꼈습니다. 얼마나 꿈을 구체적으로 그렸다면, 현실이 꿈보다 더 나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좋았으면 조바심이 나서 아침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가 될까요?
'What Matters Most(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란 책에서는 이를 '신성한 조바심(divine impatience)'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무언가에 미쳐있을때, 해가 뜨는 것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조급한 적이 있습니까? 무언가 뜨거운 것이 가슴에 들어차서 당장 하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의 강한 열망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가슴 속에 간절한 꿈이 없는 사람들은 아마 다음날 일출을 보는 데 관심이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루지 않고는 못배기는 꿈을 품은 사람들은 아마 처칠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목표 지향적인 사람들은 미래에 달성할 '그 무언가'를 위해 현재의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현재의 고통도 참아내고, 심지어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고생해서 결국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기쁨과 환희를 맛보기도 합니다.
행복의 순간은 잠시, 이들은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웁니다. 아마 전보다 더 어려운 목표일 것입니다. 이렇게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과정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일지 모릅니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의미 있지만, 어쩌면 목표를 위해 행복을 뒤로 미루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반면 꿈은 본질적으로 현재와 미래의 속성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모습, 간절히 원하는 일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현재의 내 가슴은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그리고 꿈꾸는 자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를 그 꿈으로 가득 채우게 됩니다.
이들에게는 꿈을 향해 가는 여정 자체가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기 때문에 현실은 즐거움의 연속이고,
원하는 방향으로 점차 가까이 가는 여정 자체가 기쁨이며,
결국 꿈꾼대로 되어 있는 모습에 감사하며 한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꿈꾸는 자의 행복한 미소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도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가 진심으로 웃을 수 있다면, 아마 그 안에는 꿈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새해 목표처럼 세우기는 하였으나 잘 지켜지지 않고, 지키는 과정 자체가 힘들다면,
그 목표 안에는 꿈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꿈이 있는 목표는 행복과 함께하는 여정이지만, 꿈이 없는 목표는 행복을 좇는 가시밭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사명과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꿈이나 사명에 대해 질문하면 본인들이 원하는 직업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거나 정년퇴임을 하게될 경우는 삶의 목적을 잃었다고 낙심하거나 심지어는 건강을 크게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본인의 직업이 곧 사명이라고 착각하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직업보다 소중한 존재이며, 여러분의 사명은 직업을 포괄해야합니다.
오해2: 내 역할이 곧 나의 사명이다
직업을 사명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남성들에게 많이 발견된다면, 역할을 사명으로 착각하는 경우는 여성들에게 많이 발견됩니다. 특히 어머니들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요, 물론 어머니로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은 그 무엇보다 숭고한 사명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성장하면 독립하게 마련이고, 사랑하는 가족과 사별할 수도 있는데, 역할을 사명으로 착각할 경우 삶의 의욕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가지 역할이 있겠지만, 그 이전에 여러분 자신에게 매우 소중한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은 역할을 포괄한다는 개념 잊지 마십시오.
오해3: 'To do list(할일 목록)'이 곧 나의 사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목표를 세우면서 해야할 일의 목록을 적습니다. 이중 지키는 것도 있고 지키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때로는 지키지 못하는 일들로 본인의 의지에 대해 자책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한번 돌이켜 보십시오. 여러분이 작성한 '할 일 목록'이 지나고 보면 매우 사소해서 그 일을 하지 않아도 인생에 크게 변화된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정작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진정한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 사소한 '할 일 목록'은 잠시 치워두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오해4: 나는 현재 사명에 따라 살고 있지 않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타고난 재능이 있으며 이는 서로 비교할 상대적인 성질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매우 귀중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여러분은 축복 안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하는 일을 너무 보잘것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의 선 땅이 거룩한 땅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사명도 바로 현 위치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해5: 나는 사명을 가질 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멀리 아프리카에서 나비가 날개짓 하는 것과 같이 겉으로 보기에는 하찮은 사건이 알래스카의 대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말은 우리가 단순히 호흡하며 살아가는 일 만으로도 세상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회 속에 있는 이상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사소한 재능과 배려가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을 바꿀 만한 귀중한 선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명을 갖기에 충분히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해6: 나의 사명은 위대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갖고 있는 재능과 사명은 그 자체로 소중한 절대적인 개념이지 서로 비교하는 상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를 위대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높이 솟은 멋진 산도 좋지만, 가까이에 있는 오름직한 산이 좋을때도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작은 재능을 가졌을 지라도 그것 자체로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명이 꼭 위대해야 한다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릴때 진정한 사명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해7: 사명에는 고통이 따른다
사명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왠지 '사명'하면 무언가 커다란 의무를 감당해야만 할 것처럼 느낄 수가 있습니다.그러다보니 사명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방식을 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메고 있는 멍에때문에 제대로 숨쉴 수 없거나 움직이는데 지장이 있다면, 그것은 사명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9~30)"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관심사나 재능에 맞지 않는 사명도 떠맡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사명은 너무 무거울지 모릅니다. 희생과 봉사는 숭고한 것이지만, 그것은 온전히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가볍게 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떠한 고통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세상에 고통이 없는 일은 없으니까요.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은 사명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반면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고통은 오히려 큰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요, 기억하십시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은 결코 사명이 아닙니다.
오해8: 내 사명은 동료들 사명과 같다
'근묵자흑(近墨者黑)' 혹은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한 사람들과 계속 어울리면,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가치와 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좋은 영향이라면 모를까 본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더러 있지요.
비록 여러분들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늘 함께 있더라도 여러분의 사명이 그들과 같아야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복제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꼭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오해9: 지금의 환경은 곧 나의 운명이다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것이 어떤 사람이 될지를 결정한다는 말은 사실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빈민가에서 태어난 흑인 남자들은 모두 구걸하다가 인생을 마감해야만 하나요? 이라크에서 태어난 소녀들은 아름다움을 숨기고 평생을 살아야만 하는 건가요?
물론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그러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환경이 여러분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만들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사명이 환경을 변화시키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일지도 모릅니다.
오해10: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나의 진정한 사명과 매우 근접하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꿈을 발견하여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수험생들은 본인의 사명이 고시합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욕망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일 그것이 잘 되지 않았을때는 심한 허탈감과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욕망인지 진정한 사명인지 생각해 보셨나요? 이를 주의 깊게 검증해 보고 본인에게 꼭 맞는 사명을 발견하십시오.
인류는 참 많은 것들을 발명해 왔습니다. 그리고 각각에 맞는 이름을 붙였으며, 원하는 대로 이것들을 사용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게 된 데에는 창조주의 목적이 있었으며,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하여 소명을 완수하는 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이렇듯 우리 인생은 마치 롤플레잉 게임을 하듯이 미션(Mission)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그 미션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할텐데요, ‘꿈과 성공의 차이’에서 밝혔듯 어린아이가 어른보다 그것을 더 쉽게 찾아냅니다. 즉 어린아이는 꿈을 쉽게 말할 수 있고 하기 싫은 것을 쉽사리 구분해 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어린아이와 어른은 조건 자체가 달라 단순 비교가 힘들겠지만, 꿈이라는 속성만을 놓고 보았을땐 분명 어린아이가 꿈에 더 가까이 있는것 같습니다.
따라서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는 구절은
너희가 꿈을 좇지 아니하면 인생의 목적을 완수하지 못할 것이고, 그리하면 내가 천국문을 열어주지 아니하리라
우리 인간은 영원한 시간 속의 한 점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부모님으로 부터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고, 우리 부모님 역시 부모님의 부모님들로 부터 생명을 받아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은 조상의 부모님으로 부터 생명을 받았고, 결국 이 땅의 모든 생명체는 창조주로 부터 생명을 받았습니다.
창조주의 관점으로 우리는 두 가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창조주에게 생명을 빚졌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창조주는 나와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명을 주어 사회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슴뛰도록 열정을 바칠 수 밖에 없는 꿈은 나의 노력으로 인해 타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선호하는 직업 들은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억울한 사람에게, 의사는 아픈 사람에게, 교사는 배우는 사람에게 혜택을 줍니다.
언뜻 보기에는 돌려줄 것이 없는 것 같아도, 혼자서 일하는 것 같아도, 꿈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혜택을 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음악을 하는 사람 들은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돌려주고 있습니다.
꿈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베풀게 됩니다.
반면에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것은 판별이 쉽습니다.
도박, 절도 등은 스스로의 만족은 높여줄지 모르나 그 자체로 어떤 혜택을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지요.
이런 것들은 꿈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꿈이라는 것 역시 창조주의 원리 안에 존재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꿈은 우리 안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그것이 창조주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면서 함께 쥐어진 재능과 코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면서 호흡과 함께 각기 다른 생김새, 성격, 재능, 적성 등을 갖고 태어납니다. 우리는 이것을 개성이라 합니다.
키가 큰 것도, 팔이 짧은 것도, 인내심이 많거나 혹은 조급한 것도, 몸이 둔한 것도, 숫자보다는 그림을 좋아하는 것도 모두 그 사람이 생명과 함께 창조주로부터 받은 귀한 재료입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꿈에 관한 중요한 속성을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바로 ‘사람은 본인의 꿈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편안한 것과 익숙한 것을 좋아합니다(고통을 참는 고행은 있을 지언정, 불편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때 저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있게 마련인데 이는 우리가 태어날때 물려 받은 재료, 즉 개성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됩니다.
좌뇌보다 우뇌가 발달한 사람은 숫자보다는 그림을 그릴때 자연히 편안함을 느낄 것이고, 신체적인 민첩함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앉아서 놀 때보다 밖에서 스포츠를 할때 행복한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개성과 밀접한 일에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이것이 자연스럽께 꿈으로 연결되면서 그 꿈을 좋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할 때 익숙함을 느끼고 행복감에 빠진다면 그 일이 내 꿈과 관련된 일은 아닐까 이렇게 역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재료에 맞는 옷을 지어 입는 것이 가장 좋은 옷이겠지요
반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갖고 태어난 재료가 분명히 있는데 그 재료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옷을 입지 않고 남들의 재료로 만들어 놓은 옷을 입으려니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엔트로피는 점점 증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갖고 태어난 재료를 되돌릴 수 없기에 그냥 불편한 옷을 계속 입고 있거나, 그만 벗어버리고 나에게 맞는 옷을 입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불편한 옷’을 감수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더욱 불행한 것은 나이가 들면서 그 옷이 불편하다는 사실조차 망각해 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본인의 꿈을 잃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저마다 갖고 태어난 재료로 익숙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 우리의 꿈입니다.
비전(Vision)은 막연한 꿈(Dream)과는 다르다. 꿈이 ‘~하고 싶은 것’, ‘~가 되고 싶은 것’과 같은 막연한 바람이나 소망이라면, 비전은 ‘~까지는 반드시 ~할 것’, ‘~까지는 반드시 ~가 될 것’처럼 기한이 있는 미래의 청사진이다. 미래의 일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머릿 속에 영상화한 것이다.
-[가슴뛰는 삶]중에서... 33페이지
‘가슴 뛰는 삶’은 우리가 진정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통찰이 잘 엮인 책입니다. 근래에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책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비전(Vision)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제 견해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 정리해 봅니다.
먼저 제가 생각하는 ‘꿈(Dream)’이란,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간절히 ~하고 싶은 것’입니다. 따라서 ‘~까지 반드시 ~할 것’ 등의 부자연스러운 동기부여가 없어도 ‘스스로 하지 않고는 못배기거나’ 하게된다면 ‘미치도록 열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꿈(Dream)이 없는 비전(Vision)은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알아야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올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청사진만 만든다면 헛다리짚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거나 막연히 알고만 있는 상태에서 ‘~까지는 반드시 ~할 것’ 등의 목표만 잡아 놓으면, 그 목표에 얽매여 더더욱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어렵게 됩니다.
꿈 없는 비전과 목표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몇 년 전에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응답해서 바라는 것이 현실이 된다’는 ‘시크릿’ 열풍이 불었는데요, 원하는 것을 간절히 구하라 했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간절히 구하기만 한다는 것이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결국, 꿈과 비전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닌 필요와 충분의 관계이며 보완의 관계입니다. 꿈이 없는 비전은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며, 구체적인 비전과 실행이 없는 꿈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본인의 ‘간절한 꿈’을 미래의 명확한 청사진인 ‘비전(Vision)’으로 발전시켜 ‘미치도록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인생의 열쇠이자 올바른 과정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돈은 자연히 따라 온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단, 돈이 더딘 속도로 따라올 수도 있다는 점을 모두들 잊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실행한다면 길은 열린다. 역사 속 인물 가운데에도 난관에 굴하지 않고 꿈을 좇아 성공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나 퀴리 부인 같은 사람들이 그렇다. 미국의 백화점 왕 J.C. 페니는 성공하기 전, 파산을 경험한 적이 있다. 배우 실베스타 스텔론은 대히트를 기록한 영화 ‘록키’의 주인공이었지만 그렇게 되기 전, 50여 곳이나 되는 영화사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에디슨도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해야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실패를 각오하고 자신의 꿈을 끝없이 추구했다’는 점이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하고야 만다는 뚝심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우선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꿈은 당신의 소망이나 호기심, 관심, 열광하는 것 등의 집합체에서 발생한다. 꿈이 가시화되면 자신의 모든 힘을 집중시켜야 한다. 소망이나 꿈을 중심으로 생활할수록 당신에게 도움이 될 인물, 기회, 돈은 더 많이 따라온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돈이나 기회는 항상 마지막 단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은 꿈을 구체적으로 그린 다음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돈은 꿈에 대한 열매로 반드시 뒤따라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선 돈을 모은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한다. 예를들면 부동산으로 돈을 불린다든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또는 영업으로 돈을 번 다음에 꿈을 이루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이들의 대부분은 돈을 버는 데 급급해서 꿈을 실행하는 단계까지 가 보지도 못한다. 그러는 사이 꿈은 저만치 달아나고 만다.
이제 돈이 없다는 걱정을 하기에 앞어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지부터 고민하자. 꿈을 실현하면서 부딪히는 난관은, 싫어하는 일을 할 때느끼는 심적 부담감에 비한다면 그래도 견딜만하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지 몰라도 꿈을 추구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기쁨으로 넘친다. 어차피 할 고생이라면 자신의 꿈을 좇으며 사는 인생이 훨씬 희망적이다.
그러므로 비록 돈이 더딘 속도로 따라올 수 있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돈은 자연히 따라 온다’는 진실을 기억하며 하고 싶은 일을 더 이상 미루지 말자.
직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시에 금전 등을 얻는 생활 수단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직업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모든 꿈을 삶 속에서 실현하며 사회에 공헌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생활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목적인 ‘존재 의의’를 깨닫게 합니다.”
이렇게 충실하고 정열적인 인생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생이다. 이 정의에 따라 살아가면 생활하는데 필요한 수단이나 방법은 힘들여 찾지 않아도 자연히 얻어진다.
그러니 굳이 직업을 구하려고 애쓰지 말자. 대신 자신의 꿈을 좇으며 당신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자.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지내는 시간을 늘리자. 좋아하는 일과 관련된 장소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출하는 사람들과 사귀자. 당신과 공통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자.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책을 읽자. 자기계발을 위한 강연회나 영화, 세미나 그리고 모임 등에 빠지지 말고 참석하자. 좋아하는 분야를 충분히 즐기자. 그리고 깊게 파고들자.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에 맨 처음 도전하고 용기를 내어 행동하자. 그 다음은 모두 ‘작은 한 걸음’이 이끌어 줄 것이다.
폴 매카트니를 비롯한 비틀즈 멤버들은 음악을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음악을 좋아했기에 단지 음악에 빠져서 시간을 보냈고, 마찬가지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마이클 조던은 농구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농구 코트를 떠나선 살 수 없었다. 유명한 여류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도 일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예술에 몸담고 싶다는 직관을 중시하며 살다보니 그것이 평생 그의 생활을 끌어주는 수단이 된 것이다. 오키프는 아흔이 넘어 죽을 때까지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는데 그녀는 아흔 둘에 도예를 시작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생활 속에서 실행하면서 서서히 시너지 효과가 생겨났으며 활기 넘치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다. 온 몸이 의욕으로 똘똘 뭉쳐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이 한결같은 열정이 자석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활기차게 인생을 살다 보면 하루 하루가 보람차다.
부득이하게 직장을 그만두는 일은 있을지 몰라도 활기차고 정열적인 인생에서 해고되는 일은 없다. 이것이 소스에서 말하는 직업이다. 이제 마음에 드는 일을 구하려고 아둥바둥 하지 말자. 좋아하는 일을 하며 당신만의 인생을 알차게 꾸려가자. 그러면 일이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현실’이란 그 자체로 ‘사실’을 말하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실’은 ‘인식’에 지나지 않을뿐 그 자체가 ‘사실(fact)’은 아닙니다. 또한 현실은 인식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동시대 사람들의 관점이나 시각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현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근거로 활용하는 것은 ‘통념’ 혹은 ‘데이터’ 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만 해도 지구는 온 우주의 중심이었고 평평했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고, 그것이 ‘통념’이자 현실이었죠. 그런데 ‘사실’은 어떻습니까? 이제 아시겠죠, ‘현실’과 ‘사실’은 다릅니다.
또한 소니(SONY)가 시장조사 ‘데이터(data)’만을 믿고 그것을 ‘사실(fact)’로 받아들였다면, 녹음 기능이 없는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Walkman)’이 빛을 볼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습니다.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주변의 통념의 벽에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현실’을 ‘사실’이라 받아들이지 않고, 본인의 뜻을 관철시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대다수 사람들은 이름없이 사라져 갔지요.
그러므로 ‘뜬구름만 잡지 말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을 들었을때, ‘해 봤수? 안해봤음 말을 하지 마세요~’라는 배짱으로 통념을 뒤집는 것이 꿈을 향한 첫 걸음입니다.
"집을 지으려면 우선 토대를 세우는 일이 첫 번째이고, 다음으로 벽을 만들고, 1층의 마루를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꼭 필요하지 않을까요?"
내 대답은 명료했다.
"일을 하나씩 순서대로 실행하는 것과 우선순위를 매기는 행위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건축을 예로 들어 봅시다. 집을 지을때 토대를 세우는 일, 그것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말하자면 집을 짓는 장소와 경치, 설계, 건재의 품질, 예산 등 다른 부분은 아무래도 상관없고 토대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착실하게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없을 겁니다. 토대도 중요하지만 지금 열거한 다른 점들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모두에게 같은 시간과 주의를 할애할 필요가 있습니다."
-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라]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손가락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선순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열거하여 순번을 매긴 다음 리스트의 제일 윗부분부터 실천하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한정된 자원을 바탕으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매겨 일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일을 가장 우선시한 나머지 본인에게 즐겁고 만족을 주는 꿈과 관련된 일은 거의 실천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내게 있어 첫 번째 우선순위는 일이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뭐. 이번주 까지는 야근이 있으니 다음주에 시간이 나면 예전에 하고싶었던 공부를 해야지.’ 그리고 다음주가 끝날 무렵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휴, 오늘도 바빠서 아무것도 못했네. 다음주에 시간나면 꼭 해야지.’ 이렇게 우선순위에서 밀린 일들은 다음 주에도, 다음 달에도, 다음 해에도 시간이 없어 하지 못합니다. 그러는 사이 체력과 기력이 소진되고 스트레스와 무기력, 불면, 두통 등을 호소하며 번아웃(탈진)이 되어 버리죠.
결국 일만을 우선순위로 두면 반드시 인생의 균형이 깨지게 되어있습니다. 일적으로 치중하여 우선순위에 따라 사는 사람은 좀처럼 마음의 만족을 느끼기 힘들고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여러 각도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최고의 선택이란 있을 수 없겠지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태어난 목적을 찾아 몸과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꿈과 열정을 모두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죠. 우리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적으로 만족을 추구하는 전인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일과 관련된 우선순위에만 얽매이는 것은 인생의 균형을 무너뜨린 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본인의 꿈과 열정을 이끌어내는것 역시 소중히 생각하며 실천해야겠습니다.
우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뭔가 희생이 뒤따른다고 배웠고 그러한 사고방식에 얽매여 현실에 순응하며 살고 있다. "지금 하는 일은 너무 따분하다", "비행훈련 교관이 되고 싶다", "연극 배우가 되고 싶다", "해외 명차에 관련된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어. 우선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니까"라며 꿈을 접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의 생각대로 인생을 디자인해 보라. 꿈은 모두 이룰 수 있다. 타협은 필요하지 않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모두 손에 넣기 위해서는 유연한 사고와 전혀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할 뿐이다.
인생이 타협의 산물이고 양자택일의 결과라는 말이 아직 존재하는 것은 당신이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인생의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고 설계사다. 자신의 꿈을 충족시켜줄 인생을 직접 디자인해 보자. -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라] 중에서...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장 빈번한 핑계거리는 현실에 대한 타협이다. 그들은 원하는 것이 있어도, ‘우선 현실적인 부분이 더 중요하니까’라며 원하는 것들을 쉽사리 포기한다.
이는 마치 코끼리를 얇은 밧줄로 묶어놓는 것과 같다. 어린 코끼리를 단단한 쇠사슬에 묶어 놓으면 처음에는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겠지만 이내 본인의 능력 밖임을 알고 포기해 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포기한 코끼리는 성인이 되어서 본인이 쉽사리 끊을 수 있는 얇은 밧줄로 묶어 놓아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우리 인간의 능력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진정 원한다면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할 수 있다. 아니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모두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현실과 쉽사리 타협해 버린다면 어느새 현실이 썩은 밧줄이라도 끊어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결국 우리의 가슴 속에 품은 꿈을 실현 시키면서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이라는 썩은 밧줄을 끊어내려는 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효율이 나빠지고 생산성이 떨어지니 분발해라, 세상은 우리들을 이렇게 세뇌시킨다. 그러나 결심을 망설이며 자꾸 뒤로 미루는 것은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대단히 자연스럽고 필요한 행동이다. 결코 나쁘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꾸물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 안에서는 잠재의식이 정보를 수집하여 다음에 일어날 사태에 미리 대비하고 있다.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있는 중이다. 인생이라고 하는 방정식의 한 페이지 앞을 풀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때 우리는 정보를 수집하여 소화시킨 다음, 일이 명확해질 때까지 시간을 번다. 자꾸 망설이게 되는 이유는 잠재의식에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 기다려라' 또는 '아직 행동할 시기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오기 때문이다.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면 게으르고 의욕이 없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사실은 행동에 필요한 준비와 정보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명확하게 상황을 파악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또 성급한 행동이나 일단 상황만 모면하고 보자는 임기응변식 대처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한다. 모두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을 확실히 손에 넣지 않으면 굳은 결의가 생기지 않을 뿐 아니라 현명한 판단도 할 수 없게 된다. - [가슴 두근 거리는 삶을 살아라]중에서...
“결단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목표 지향적인 사람들은 이 말을 숭배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남보다 빨리 목표지점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결단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착수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그런데 목표보다는 목적이 중요할 경우에는 빠른 결단보다는 정확한 결단이 중요해진다. 이때는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해 결단을 내리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더 빠를 수 있다.
맹목적으로 공부만 해서 명문대학교에 들어갔는데 막상 졸업할 때가 되니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본인의 재능이나 적성과는 상관없는 의학전문대 편입이나 고시준비 등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만일 이들이 여유를 갖고 자신의 인생 목적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보고 방향에 대한 결단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비록 20대 초반의 소중한 1~2년을 꿈을 찾는데 보냈을 지라도 명확한 꿈을 발견한 이상 엄청난 가속도로 전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목표가 정해져 있고 일의 본질을 명확하게 알고 있을때에는 결단을 미루어야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상황의 본질을 깨닫지 않은 채 무리하게 결단을 내릴 경우 오히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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