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모두가 간직하지는 않습니다. DreamCOSMOS는 자신의 소중한 꿈을 발견하고 이루어 가는 공간입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여러분들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우리 가슴에 품은 그 꿈을 함께 이뤄가시죠!"
DreamCOSMOS
Statistics Graph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내 목소리는 언제나 내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내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 난 목소리에 의지했죠.

난 왜 사람들이 날 괴롭히는지 정말 이해하지 못했어요.

난 조금 다를 뿐인데...

난 그게, 내가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게 된 이유라고 가끔 생각했어요.


노래를 부를 땐 그런 문제가 없었어요.

난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었죠.

난 평생 내가 하찮다고 생각했지만, 

첫 번째 오디션이 끝난 다음에

난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난 폴 포츠에요.

- Paul Potts

어릴적부터 왕따를 당해 늘 혼자있었던 폴,

노래만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자 꿈이었습니다.

성악가의 꿈도 꾸어 봤지만 교통사고와 종양으로 포기한 적도 있습니다.

핸드폰 영업사원으로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불행한 인생을 살아온 폴은, 'Britain's Got Talent'라는 무대에서

꿈을 향해 남은 여생을 걸었다고 말합니다.

One Dream.

One Chance.

Dreams Do Come True.

그에게 너무나도 어울리는 말입니다.


비록 포스팅이 늦은감은 없지 않지만

처음 보신 분에게는 잊지 못할 감동을

이미 보신 분에게는 다시 한번 감동을 드립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Paul Potts - One Chance [CD+DVD Special Edition] - 10점
폴 포츠 (Paul Potts) 노래/소니뮤직(SonyMusic)
[수입] 폴 포츠 : 열정 - 10점
폴 포츠 (Paul Potts) 노래/SonyBMG(수입)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10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cfactory.tistory.com 스타일스타일 2009/09/23 09:45  Addr  Edit/Del  Reply

    폴포츠는 분명 많은 이들에게 잊고 있던 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꿈과는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꿈을 잃지/잊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면 저런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사전 준비와 기회인 것 같습니다. 그 타이밍도 잘 맞아야 할 것 같구요.

    • Favicon of http://www.dreamcosmos.com DreamCOSMOS 2009/09/23 23:23  Addr  Edit/Del

      그리스에 아주 우스꽝스러운 동상이 있다고 합니다.
      동상의 앞머리에는 머리숱이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인데다, 발에는 날개가 달려있습니다.
      그 동상 아래는 다름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하네요.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Chance)'이다.

      기회가 언제올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폴포츠처럼 꿈을 항상 생각하며 삶의 빈자리를 가득 채운다면, 분명 기회가 올때 꽉 움켜쥘 수 있을 것입니다.

      스타일스타일님 파이팅!!!

효율성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이죠.

의사로서 14년 동안의 경험이 CEO를 하면서 거의 쓸모가 없어졌고요, 

그리고 프로그래밍 경험도 경영을 할 때는 결국 쓸모가 없어지고,

만일 효율적인 인생이 성공이라 한다면 저같은 사람 인생은 실패라고 봐야 되거든요.

하지만 인생은 효율성이 다가 아닌것 같더라고요.

결국 자기에게 정말로 맞는 분야를 위해서 쓰는 시간이 값진 시간 같아요.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기에게 기회를 주는 거에요.

자기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자기가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하면 정말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그 기회를 자기에게 주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고 기회인거죠.

- 안철수 교수님, 무릎팍 도사 출연 중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분 중의 한 분, 안철수 교수님의 인생을 실패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꿈을 지향했으며, 스스로의 꿈을 위해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그런 그가 무릎팍 도사를 넘어 내년 3월부터 중학교 1학년 생활국어 교과서에서 아이들을 위해 '꿈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승연이라는 학생이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안 교수님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꾸며져 있는데요,

안 교수님은 `어떤 꿈을 가져야 할까'라는 질문에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을 찾아야 한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의미가 있는지, 재미가 있는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등 세 가지 기준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안 교수님은 이어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철수 교수님은 무릎팍 도사에서도, 몇 권의 저서에서도, 저와의 짧은 면담에서도 모두 동일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시골의사 박경철씨의 인터뷰 후기에서와 같이 정돈되고, 정갈하며, 투명한 분이라는 것을 만나보신 분들은 아마 한결같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안 교수님이 새롭게 구상하시는 그림이 빛을 발하여 우리나라에 좋은 밑거름이 되면 좋겠습니다. 안철수 교수님, 존경합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9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09/09/08 23:30 Dream Story/Making the Dream

오랫만에 한 지인과 점심식사를 함께하였습니다.

고등학생 딸과 아들을 둔 중년의 변리사님인데요, 이 분은 한국의 공교육 대신 열린 교육을 위해 자녀들이 흥미 있어 하고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충분히 배우고 경험하게 하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5년 전 처음 이 분의 교육 철학과 방침을 들었을때 참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그런 철학을 갖고 있어도 실천하기가 참 어렵기 때문이죠.

저는 자녀들이 얼마만큼 성장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최근 근황을 여쭤보았습니다.

그런데 변리사님의 이야기는 뜻밖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것만 하게 내버려 두었더니, 이것 조금 저것 조금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많아 무언가 꾸준히 하는 것이 없더랍니다. 오히려 현재는 대학 입학을 위해 수능시험을 보아야 하지만, 성적이 그리 신통치 않아 걱정스럽다며 하소연하셨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 성과가 좋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제게, 변리사님 자녀의 사례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결과가 좋질 않을까?'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문득 어제 만난 천재 프로그래머 - 저는 그렇게 인정합니다. 제가 그 분을 천재로 인정하는 건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프로그래밍 하는 것 자체를 즐기며 관련된 공부를 놀이로 생각하여 늘 배우기 때문입니다 - 선배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 분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분명 좋은 성과를 내는데 기본적으로 중요하긴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늘 좋을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인내하다보면 그 자체에 동화되어 한 차원 높은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아무리 좋아하는 것을 하더라도 인내의 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인데요, 김연아 선수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가 뭐래도 김연아 선수는 꿈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보통사람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했다는 주변 지인들의 말을 우리는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됩니다.

1년에 1800번 넘어져도 그냥 웃지요...

우리는 물건을 살때 돈을 지불합니다. 가치있고 귀한 물건일수록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물건이 너무 갖고 싶어서 돈을 지불하지 않고 그냥 가져가면 그건 엄연히 도둑질이요 범죄행위입니다.


꿈을 이루는 과정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반드시 피와 땀, 인내, 꾸준한 노력 등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값어치가 나가지 않는 것이거나 언제까지나 '그림의 떡'으로만 남게될 것입니다.


그래도 이러한 과정이 의미있는건 스스로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갖고싶지도 않는 물건을 사는데 비싼 돈을 내려면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인내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에 그만큼의 노력을 들이는 것은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며 한 차원 높은 행복감을 맛보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하며, 스스로의 꿈이 가치있다고 생각할 수록 그에 걸맞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90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희망지기 2009/09/09 00:41  Addr  Edit/Del  Reply

    따끈한 신 포스트네요.
    항상 구경만 하고 가다가 오늘은 몇자 끄적이고 갑니다.^^

    글 초반에 적힌 한 가족의 이야기를 읽으며
    전 '자유로움'이 가지고있는 장 단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로움은 창조와 맞닿아 있기에 천재들에게는 꼭 필요한 요소지만,
    님의 말처럼 댓가가 없는 자유는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홈스쿨링..을 꿈꾸던 저도^^
    소정의 '기간과 목적'을 동반하는. 즉 책임감을 동반하는 자유를
    아이들에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중요한 원칙들을 가슴깊이 두드려 깨워주는 드림코스모스..
    감사하며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힘내삼!!

    • Favicon of http://www.dreamcosmos.com DreamCOSMOS 2009/09/09 01:31  Addr  Edit/Del

      희망지기님,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저역시 앞으로 자녀 교육할때 꼭 참고해야할 것 같아요...
      그 부분은 앞으로도 얘기를 많이 나누도록 해요~

      그럼 희망지기님,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잘 뿌려주세요~^^

제 인생 최고의 멘토는 스티브 잡스입니다. 

미혼모에게 태어나 입양아로 길러진 배경도 그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창업한 회사에서 영입한 CEO와의 권력싸움으로 해고된 것도 그를 막진 못했습니다.

너무 빠른 나이에 성공한 후, 미국 최대의 실패자로 낙인찍혔어도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NeXT에서, 그리고 Pixar에서 계속 꿈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다시 애플의 CEO로 복귀할때, 거의 쓰러져 가던 회사의 사정도 그를 막진 못했습니다.

그는 1년 만에 10억 달러의 적자 회사를 4억 달러의 흑자회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이팟으로 아이폰으로 경영의 신화를 계속 써 가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그의 회사는 유일하게 고속성장을 하고 있으며,

스티브 잡스는 이 시대 최고의 CEO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I want to put a dent in the universe. (나는 우주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

라고 말했던 스티브 잡스...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지만, 미국 최고의 대학인 Stanford에서 졸업식 축사를 합니다.

감동적인 그의 연설, 함께 보시죠~ Steve Jobs입니다...

다음은 그의 연설문 전문(한글 번역)입니다.


우선 세계 최고의 대학교 중 하나인 스탠포드의 졸업식에 이렇게 함께 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실 전 대학교를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게 제가 대학교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본 경험이 되겠네요.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제 인생에서의 세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세가지 이야기일 뿐이에요.

첫번째 이야기는 인생의 새옹지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리드 대학교를 6개월 정도 다니다가 중퇴했습니다. 그런 후에도 한 1년반 동안은 강의를 청강하며 계속 학교 주변에 머무르긴 했지만요. 제가 왜 학교를 그만두었냐구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저를 낳아준 어머니는 그당시 아직 결혼을 안한 대학원생이었지요. 그래서 저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분은 제가 반드시 대학을 나온 양부모에게 입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죠. 그래서 한 변호사 가족이 저를 입양하게 되어 있었구요. 근데 제가 태어났을때 그분들이 갑자기 딸을 입양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더랍니다. 그래서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던 저의 부모님께 차례가 돌아갔구요. 두분은 흔쾌히 저를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입양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되어서야 저를 낳아준 어머니는 제 양어머니가 사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제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했구요. 저의 생모는 입양서류에 서명하길 거부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저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비로서 입양이 이루어졌죠.

17년이 지난 후에, 저는 결국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순진하게도 저는 거의 스탠포드만큼이나 등록금이 비싼 학교를 선택해 버렸답니다. 서민층에 속하는 저의 부모님의 저축액이 몽땅 제 등록금으로 쓰여질 처지가 되어 버린 거죠. 입학한지 6개월이 지난 후에 저는 대학교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직 몰랐지만, 대학이 그것을 찾아내는데 별 도움이 안 될 거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어요. 그런 곳에 부모님이 평생동안 저축한 돈은 몽땅 쏟아부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를 그만 두기로 결심했죠. 어떻게든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믿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많이 두려웠습니다. 근데 지금 돌이켜 보면 대학교를 그만 둔 건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에 하나였습니다. 자퇴 서류를 제출하자마자 지루한 교양 강의를 관두고 뭔가 더 흥미로워 보이는 강의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지요.

사실 그다지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더이상 머물 수 있는 기숙사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 방의 방바닥에서 잘 수 밖에 없었죠. 캠퍼스의 콜라캔들을 모아다가 음식을 살 돈을 마련해야 했구요. 일주일에 한번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위해 매주 일요일에는 10km가 떨어진 한 힌두교 성당까지 걸어가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냥 제 호기심과 직관을 믿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구요. 한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그당시의 리드 대학교는 서체에 관한 한 미국 전체에서 최고의 학교였습니다. 캠퍼스 이곳저곳의 각종 포스터는 전부 아름다운 서체로 장식되어 있었죠. 학교를 그만두고 더이상은 교양 강의를 들어야 할 의무가 없었기에 저는 서체 강의를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세리프체와 샌세리프체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알파벳 글자에 따라 글자간의 간격이 달라지는 것을 배우게 되었죠. 타이포그래피를 아름답게 만드는 그런 것들 말이죠. 그건 참 멋지고, 역사적으로 흥미로우며, 미적으로 미묘해서 과학으로 분석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죠.

사실 타이포그래피가 제 인생에 있어 유용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0여년이 지나서 처음 맥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하게 될때까지는 말이죠. 저는 제가 타이포그래피에 관해 아는 모든 지식을 맥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래서 맥은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지원하는 첫번째 컴퓨터가 되었던 겁니다. 만약 대학교때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더라면 맥도 여러 다양한 폰트를 지원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윈도는 단순히 맥의 복제품에 불과하기 때문에 윈도 역시 다양한 폰트를 지원하지 않았겠죠. 제가 대학교를 중퇴하지 않았더라면,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늘날의 컴퓨터는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지원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가 학교에 있을때 이런 것들을 내다 보는 것은 불가능할 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10년이 지나 돌이켜 보았을때 이러한 인과관계는 너무도 명확했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 입니다.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도저히 미리는 알수가 없죠. 그냥 어떻게든 모든게 잘 될 거라고 믿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무언가에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 직관이든, 운명이든, 인생이든, 인연이든, 무엇이 됐든지요. 이러한 삶의 방식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 삶에 모든 다름을 가져다 주었지요.

제 두번째 이야기는 열정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 제가 열정을 가진 것을 일찍 찾았거든요. 워즈니악과 저는 제가 스무살때 저희 부모님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일했지요. 애플은 불과 10년만에 저희 단 둘에서 4,000명이 넘는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맥을 출시한지도 1년이 되었고, 저는 막 서른이 되었을 시점입니다. 그때 저는 애플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날 수가 있냐구요? 애플이 크게 성장한 후에 저는 저와 같이 애플을 잘 운영할만한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처음 1년간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요. 근데 점점 그와 저는 애플의 미래에 대해서 서로 다른 비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사회는 결국 그의 편을 들었지요. 그래서 저는 서른살에 애플에서 쫓겨났습니다. 신문에 대서특필되면서 말이죠. 갑자기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무너진 느낌이었습니다.

처음 몇달간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마치 올림픽 계주에서 바톤을 떨어뜨린 기분이었거든요. 데이비드 패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나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걸 사과하려 하기도 했지요. 너무나 참담한 실패였습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갈 생각하지 했었지요. 근데 천천히 다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깨달았지요, 아직도 제가 하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걸요. 애플에서 쫓겨난 것도 그것을 바꾸진 못했습니다. 이혼을 당했지만 아직도 사랑에 빠져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당시는 몰랐습니다만, 애플에서 쫓겨난건 제 인생에 있어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성공의 무게에서 벗어나 모든게 불확실한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죠. 그 덕분에 제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기가 막을 열 수 있었습니다.

다음 5년 동안 저는 넥스트와 픽사 두개의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제 아내를 만나 연애를 시작하기도 했죠. 픽사는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 스트리를 만들어 내는 등 곧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넥스트는 애플과 합병하게 되었죠. 우리가 넥스트에서 만들어낸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핵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과 저는 멋진 가족을 이루었구요.

제가 애플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이들중 어떤 일도 일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들 하지요. 아마도 제가 약이 필요했던 시기였나 봅니다. 때로 인생은 벽돌로 이마 한가운데를 내리칠때가 있습니다. 신념을 잃지 마십시오. 제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제가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열정을 느끼는걸 찾아야만 합니다. 그건 연애 뿐만 아니라 일에도 적용되는 일입니다.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둘러봐야만 합니다. 손안에 있는 것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열정과 관련되는 모든일이 그러하듯이 찾았을때 당신은 그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중요한 관계도 그러하듯이, 세월이 갈수록 풍미가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찾을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손안에 있는 것에 안주하면 안됩니다.

저의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17살에 이런 인용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매일을 당신의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언제가는 그것이 사실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 말은 제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난 33년간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묻곤 했지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그래도 오늘 계획하고 있는 일들을 할 생각인가?" 대답이 여러날째 연속해서 "아니오"일때, 저는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때라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머지 않아 곧 죽는다는 것을 되새겨보는 것 만큼 인생의 커다란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것들 — 남들의 기대, 자존심, 망신을 당하는 것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 이러한 것들은 죽음이란 단어 앞에 너무나 사소해져 버려서 우리가 정말로 중요한 것에 비로소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죽음의 순간을 떠올려 보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잃을 것이 너무 많아서 어쩌면 조심조심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해줍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벌거벗고 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로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한 일년쯤 전에 저는 췌장암 판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오전 7시 반 정도에 스캔을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있는게 선명하게 보이더군요. 사실 그때까지는 췌장이 무엇인지도 몰랐더랍니다. 의사는 저의 암이 치료가 불가능한 종류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아마 3-6개월 정도 밖에는 살지 못할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저에게 집에 돌아가서 정리할 준비를 하라고 하더군요.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해주어야 겠다고 생각하던 말들을 다음 몇달 간 해야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가족들을 준비시키고 작별인사를 하라는 얘기였죠.

그렇게 죽음을 직면한채 하루 종일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저녁에 조직 검사을 받았죠. 내시경을 통해 종양 샘플을 채취하는 검사였습니다. 저는 그럭저럭 차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그러더군요. 현미경을 들여다본 의사가 울더라구요. 저의 암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 판명되었다고요. 저는 수술을 받았고 이제는 다 나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던 경험입니다. 앞으로 수십년 동안은 이보다 죽음에 더 가까이 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경험을 했기에 저는 다음과 같은 말을 여러분께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도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조차도 거기에 가기위해 죽기는 싫어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삶의 종착역이지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축복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우리가 인생을 가치있게 살게 해주는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음은 세대 교체를 이루어주는 촉매제입니다. 죽음은 오래된 삶을 거두어 가서 새로운 삶이 들어설 수 자리를 마련해 해줍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새로운 삶이겠지만, 머지않은 어느날 여러분도 오래된 삶이 되어 거두어지는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이야기해서 미안하지만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데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생각의 결과물을 따라서 사는 오류를 범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견해 속에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파묻히지 않도록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직관과 열정을 따라갈 수 있는 용기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정말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제가 어렸을때, 지구 전체 카탈로그라 불리던 매력적인 잡지가 있었습니다. 스튜어드 브랜드란 사람이 발행하던 잡지인데 우리 세대에게 있어서는 마치 바이블과 같은 책이었습니다. 컴퓨터 출판이 등장하기 이전인 60년대 말에 발행되던 잡지입니다. 그래서 타자기, 가위,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 등으로 잡지가 만들어졌죠. 구글이 탄생하기 35년 전에 마치 종이로 된 구글과 같은 잡지였습니다. 이상적인 지향점을 제시했던 그 잡지에는 언제나 멋진 도구와 훌륭한 아이디어들이 가득차 있었지요.

스튜어드와 그의 팀은 몇년간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70년대 중반 언젠가 마지막 이슈를 발행하게 되었죠. 제가 여러분의 나이였을때 입니다. 마지막 이슈의 뒷 커버에는 한 시골길의 이른 아침을 찍은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아래는 이런 문구가 쓰여져 있었죠: "현실에 안주하지 말아라. 그리고 무모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Stay hungry, stay foolish)." 그들이 최종 이슈를 발행하며 보낸 작별인사 였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아라. 무모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Stay hungry, stay foolish). 저는 언제나 제가 그러하지 않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이제 졸업을 하고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께 같은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무모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Stay Hungry, Stay Foolish!!!)

감사합니다.

2005년 6월 12일, 스탠포드 대학교

번역문 출처: http://beyond.daesan.com/pages/steve-jobs-stanford-speech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 추천도서

iCon 스티브 잡스 - 10점
제프리 영 외 지음, 임재서 옮김/민음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7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사 캔들러는 가난하지만 꿈과 희망을 품고 사는 소년이었다. 그가 열 살이 되었을 때 남북전쟁이 터졌다. 캔들러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돈을 벌기 위해 약국에 점원으로 취직했다. 그리고 청년이 된 그는 정규교육은 마치지 못했지만, 의사나 약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밤마다 라틴어와 희랍어, 화학과 의학을 공부했다. 월급은 겨우 25달러였지만, 그에게는 성공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일하고 있는 약국에서는 비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시골 변두리 약국에서 평생 일하다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캔들러는 주저없이 호주머니에 달랑 1달러 57센트만 넣고 고향을 떠났다. 일자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그난 애틀랜타에 도착해 약국에 취직했다. 열심히 일한 지 4년 만에 자신이 직접 약국을 운영하게 됐다.


어느날 그는 콜라의 판매권을 팔러 다니던 펨퍼턴을 만났다. 콜라의 맛을 보고 단박에 반한 그는, 갖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2천 3백 달러에 코카콜라의 권리를 사버렸다. 또한 자신이 사들인 자양강장제를 음료수로 만들어 판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이것은 바로 캔들러의 경쟁력이 됐고, 오늘날의 코카콜라를 만드는 바탕을 이뤘다.


1888년 제품을 출시한 이후, 현재 세계 인구의 60%가 코카콜라를 가끔 마시고, 10%인 약 6억이 넘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코카콜라를 마신다고 한다. 세계 2백여 개국에서 1초당 1만 1천 6백 잔이 팔리고 있는 셈이다.

누가 산타할아버지에게 빨간옷을 입혔을까요?

그렇다면, 창립자인 캔들러가 중요한 가치를 부여했던 것은 무엇일까?

 도덕성과 열정은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도덕성이 없는 열정은 성난 황소에 불과하다.

그는 이렇게 영업사원들에게 늘 도덕성을 강조했고, 검소하게 생활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서 일하라!'는 신조를 마음 속에 되새겼고, 우편물의 편지봉투 모서리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메모지로 사용했다.


그는 항상 남보다 일찍 일어나 더욱 열심히 일했다. 코카콜라의 회장이 되어서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단돈 1달러를 벌기 위해 백 리를 걸었던 기억을 잊지 않았다. 현업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자선사업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사업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본받을 사람으로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있다.


당신은 남들이 말하는 일류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는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했는가? 천재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캔들러를 떠올리자.

지금 당장 아무것도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것일지라도, 시각을 다르게 갖고 발전시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꿈을 향한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그것을 이룰만한 인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꿈 꿀 수만 있다면 이룰 수 있다>를 재구성하였습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도서

실패하는 사람들의 10가지 습관 - 10점
도널드 R. 키오 지음, 김원옥 옮김/더난출판사
지난 60년 동안 코카콜라를 비롯한 일류 기업의 경영 일선에서 활약했던 도널드 키오가 기업과 개인이 반복적으로 저지르기 쉽고 또 치명적인 실패 습관 10가지를 알려줍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6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980년대에 저는 정말 잘 나갔습니다. 어떤 잡지는 '트럼프가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금으로 변한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저 또한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부동산 시장으 불황으로 인해 정확히 92억 달러의 부채를 지게 됐습니다. 1980년대에 부동산 왕에서 1990년대 초를 근근이 버티다가 중반에 들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죠. 저는 오늘도 1970년대 젊은 시절만큼이나 열심히 일합니다. 내가 저질렀던 실수를 누구도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을 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회장은 슬럼프에 빠졌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시 회사의 부동산은 거의 차압당했고 자산도 동결됐다. 그는 담보로 맡길 것이 없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받을 유산을 저당잡혔다. 또한 형제들로부터 생활비를 받기도 했다. 그의 마음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는 이렇게 몇 년간의 슬럼프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만히 있어도 피가 마르는 것 같은 나날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다시 부동산의 가치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하고 좌절할때 이 사나이를 기억하세요!

젊은 나이에 성공해 미국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며 어둡고 긴 터널을 겨우 빠져나온 그는 항상 어려웠을 때를 생각해 지금도 늘 열심히 일하고 있다.


트럼프 회장은 환갑이 다 된 나이에도 일주일에 평균 85시간을 일한다. 주말을 포함해서 하루에 12시간 정도씩 일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가족에게 소홀한 것도 아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화려한 것을 선호하는 도널드 트럼프 회장의 행동 때문에 그를 '사치스런 졸부'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92억 달러의 빚을 지고 미국 부동산업계에서 소리 없이 사라질 뻔했던 그가 포기하지 않고 현재의 위치까지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평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교류해 자신의 시야를 넓히고 이를 토대로 유사시엔 승부수를 던질 줄 알았던 것이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얼마나 높이, 얼마나 멀리 갈 것인가?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바로 그만큼 이루어진다. 마치 도널드 트럼프 회장처럼 말이다.

- <꿈 꿀 수만 있다면 이룰 수 있다>를 재구성하였습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도서

도널드 트럼프, 억만장자 마인드 - 10점
도널드 트럼프 외 지음, 김원호 옮김/청림출판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6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납치, 테러, 투옥 6년, 망명 10년, 가택연금 55회, '내란음모' 죄목으로 인한 사형선고...

한 사람이 평생 겪기도 힘든 고통을 견디어낸 사람 옆에서 한평생 사랑을 꽃피우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얼마전 좋은 곳으로 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여사입니다.


아마 거의 모든 여성이 안락하고 평안한 결혼생활을 꿈 꿀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여사님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을 지언정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짧은 머리에 수의를 입고 있는 남편을 면회하러 교도소에 찾아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큰아들은 아버지를 돕는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받아 현재는 파킨슨씨병을 얻었습니다.

여리디 여린 몸을 이끌고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겪은 모진 세월이 저로서는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모진 세월 속에서도 당신의 남편을 평생 사랑하며 존경할 수 있었을까요?

1961년 5수 만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부패와 용공 혐의로 조사를 받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께 청혼을 받을때를 이희호 여사님은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그에게 정치가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이유였다면 나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였다.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그와 나를 동여맨 끈이 되었다.

결국 꿈에 대한 신뢰가 두 사람을 평생 가장 아름답고 견고한 동반자로 매듭지어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아무리 모진 고통과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셨더라도 부인 이희호 여사님께서는 제1의 후원자요, 민주화 운동을 함께한 동지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 순간마다 김 전 대통령의 곁에는 이 여사님께서 계셨던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고통은 두 분을 순수한 한 몸으로 녹여주는 용광로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던 남편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내는 분의 심정은 어떨까요? 저는 관련 동영상을 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마음을 헤아릴 순 없어도 '꿈을 함께한 평생의 동반자'를 잃는 심정이 어떨지는 만 분의 일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 용서하며 애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기를 빕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을 뜨거운 사랑의 품안에 편히 쉬시게 하실 것입니다. 어려움을 잘 감내하신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씨워 주실줄 믿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당신의 아내 이희호 
2009.8.20. 

이희호 여사는 자필로 쓴 이 편지를 본인의 자서전인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의 표지 뒷편에 남기며 그렇게 사랑하는 님을 보내셨습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 추천도서
이희호 자서전 동행 - 10점
이희호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목차
글을 시작하며_ 나의 삶, 나의 기도 

1장. 격동의 땅, 부푼 향학열(1922-1962)
따습고 행복했던 유년 / 이화고녀 시절 / 위기의 이화여전, 그리고 해방 / 
서울대 사범대와 ‘면학동지회’ / 전쟁과 유학의 길 / 매력적인 여성, 엘리너 루스벨트 / 
교수의 길 버리고YWCA로

2장. 만남과 결혼, 그리고 파란곡절(1962-1972)
책벌레, 김대중 /‘ 엄마’와‘사모님’으로 / 한일 국교 정상화 / 사랑하는 아버지! / 
7대 목포 총선은 전쟁이었다 / 40대 대통령 후보 김대중 / ‘개표’에서 진 1971년 대통령 선거 / 
두 번째 사선, 교통사고 / 동교동 문패, 金大中-李姬鎬

3장. 유신, 칠흑 어둠에 갇혀(1972-1980)
제2의 쿠데타 / ‘납치’에서 생환하다 / 의인, 정일형과 이태영 / 
암호명 ‘한복’, 3·1 민주구국선언문 / “민주주의가 죽어서 곡을 합니다” / 진주교도소 / 
부마항쟁 / 박 대통령, 비명에 지다 

4장. 짧은 봄, 긴 겨울(1980-1985)
빼앗긴 ‘서울의 봄’ / 새빨간 거짓말, ‘김대중 내란 음모’ /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
“대중이를 살려줘” / 전두환 대통령과 독대하다 / 환난 중의 입시생 / 
감옥에서 만난《제3의 물결》 / 사형수에서 망명객으로 / 해피 엔딩 ‘로미오와 줄리엣’

5장. ‘6월 민주항쟁’이 준 선물(1985-1998)
김대중은‘가택 연금 중’ / ‘1980년대 아이들’과 권인숙 /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 
투사가 된 어머니들 / ‘6월 민주항쟁’의 승리를 놓쳐버리다 / 16년 만의 의사당 / 
가정의 민주화, 가족법 개정 / 3당 합당, 야당의 길 / 1992년 대선, 정계 은퇴 /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앞에서 / 정계 복귀를 반대하다 / 꿈은 이루어진다 

6장. 푸른 기와집에서의 5년(1998-2008)
빈 곳간에서 출발하다 / 가난한 제2부속실 / ‘국민의 정부’, 여성 약진 /
옷에 얽힌 이야기 / 6·15, 남북의 감격적인 만남 / ‘노벨 평화상’을 받다 /
‘사랑의 친구들’과 ‘여성 재단’ / 티타늄 다리, 애덤 킹과의 사연 / 
소년원을 보듬다 / 엘리너에서 로라까지 / ‘주여, 저희가 교만했습니까?’ / 동교동으로 돌아와서

연보

책 속에서
“이번에도 하느님은 나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소. 이제 정계를 떠나려고 하오. 내가 말하는 것을 받아써주오.” 그의 비장한 결정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윽고 그가 구술하고 나는 받아적었다. 정서를 하는데 눈물이 주르륵 종이 위에 떨어졌다. 한번 시작된 눈물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고개를 숙이고 우는 내 모습이 처연했던지 남편이 손을 잡았다. “여보, 우리 1980년 사형선고 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웃을 일 아니오.” 그는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 본문 301~302쪽, '1992년 대선, 정계 은퇴' 중에서

힐러리와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는 그가 퍼스트레이디로 끝날 사람이 아니라고 보았다. 능력 있는 여성의 야망은 격려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매우 유능하고 매력적인 여성이다. (…) 전문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영부인이 된 힐러리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힘이 느껴졌다. 그는 클린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과 젊음을 겸비한 여성이다. - 본문 350쪽, '노벨 평화상을 받다', 본문 370쪽, '엘리너에서 로라까지' 중에서 참 길고도 매서운 세월을 함께 걸어왔다 싶다. 미국 망명 시절에는 자동차 옆자리에 아내가 없어도 모른 채 떠나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즈음 많이 달라졌다. 남편은 길 떠나는 아내가 혹여 자동차 사고를 당할까 기사에게 조심을 당부한다. 그것도 부족한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확인한다. - 본문 388쪽, '동교동으로 돌아와서' 중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6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입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서거 소식을 접하자 마자 슬픔을 감출 수 없었고, 김 전 대통령의 삶을 감히 글로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제게는 크신 분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슴 속에 '우리 한(韓)민족의 무궁한 영광'이라는 숭고한 꿈이 담겨있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의 가슴 속에 그 꿈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부디 영원한 안식처에서 편안히 쉬십시오.

정치 입문기의 김대중 전 대통령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도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 10점
김대중 지음/김영사
배움 - 10점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다산책방
21세기와 한민족 - 10점
김대중 지음/돌베개
내가 사랑한 여성 - 10점
김대중 지음/에디터
나의 길 나의 사상 - 10점
김대중 지음/한길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6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포르투갈에서 교사로 생활하면서 롤링은 TV 방송국 기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했고 딸을 낳았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사사건건 남편과 의견 충돌이 생겼다. 그녀는 결국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뒤 딸과 함께 옷가방 하나만을 들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갓난아기는 있죠, 일자리는 없죠,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낯선 장소에 내동댕이쳐진 셈이었어요.



롤링을 기다린 것은 냉혹한 현실이었다. 가능한 한 빨리 자신의 아이디어를 글로 쓰고 싶었지만, 초라한 단칸방에서 갓난아기와 함께 살아야 하는 처지였으니 생계를 꾸려나가기도 쉽지만은 않았다. 


비오는 어느날 오후, 여동생이 그녀를 찾아왔다. 롤링은 해리포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듣던 동생은 금세 빨려들었다.



언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좀 보여줘.


아직 제대로 쓴 것은 아닌데...


그래도 상관없어. 쓴 데까지만 읽지 뭐.



동생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해리포터 이야기를 정신없이 읽어나갔다.



언니, 이거 너무 재미있다. 무조건 끝까지 써봐. 다음 얘기가 너무 궁금하다고.



동생의 말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어떻게 하든 1년 안에 책을 완성해서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우선 정부보조금을 신청해 겨우 기초적인 생활만 유지해가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변변한 책상 하나 없는 집에서는 글을 쓸 엄두조차 낼 수 없어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까운 니콜슨 카페로 가 구석에 박혀 한 자 한 자 손으로 적어나갔다. 한 손으로는 글을 쓰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를 달래며 유모차를 밀어줬다. 하루하루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무명 시절 나는 실업자에 이혼녀였지만, 신세를 비관하지는 않았습니다. 해리포터 이야기를 쓰고 있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즐거워져서, 무일푼인 것도, 이혼녀인 것도 상관없었죠. 내가 겪은 시련이 동화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어요. 해리 이야기는 내 어린 시절 상상의 세계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었죠.



당시 그녀는 딸을 키우며 먹고 살기 힘들었지만 글을 쓸 수 있어서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이렇게 자신의 상상에 빠져 비서직에서 두 번이나 해고를 당했고, 가난한 이혼녀에 생활비가 없어서 쥐꼬리만한 정부보조금으로 딸을 키운 조앤 롤링. 작가 지망생이었지만 집에는 글 쓸 공간이 없어서 동네 카페의 테이블을 빌려 손이 퉁퉁 붓도록 원고를 쓴 롤링. 이제 가난했던 작가 지망생 조앤 K. 롤링은 스타 작가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2005년 12월 기준으로 그녀의 재산은 약 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순위에서도 40위를 차지했다. 75위인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보다도 한참이나 높다.


어려서부터 상상하기 좋아하는 그녀였지만, 자신의 아이디어로 이렇게 성공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롤링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성공할 수 있었다.


- <꿈 꿀 수만 있다면 이룰 수 있다>를 재 구성하였습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 양장본 - 10점
조앤 K. 롤링 지음, 김혜원 옮김/문학수첩리틀북스
시리즈 제1편
원제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1997)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 양장본 - 10점
조앤 K. 롤링 지음, 김혜원 옮김/문학수첩리틀북스
시리즈 제2편
원제 Harry Potter and The Chamber Of Secret (1998)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 양장본 - 10점
조앤 K. 롤링 지음, 김혜원 옮김/문학수첩리틀북스
시리즈 제3편
원제 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1999)
해리 포터와 불의 잔 - 양장본 - 10점
조앤 K. 롤링 지음, 김혜원 옮김/문학수첩리틀북스
시리즈 제4편
원제 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 (2000)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 전5권 세트 - 10점
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문학수첩북앳북스
시리즈 제5편
원제 Harry Potter & The Order of The Phoenix (2003)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 전4권 세트 - 10점
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문학수첩북앳북스
시리즈 제6편
원제 Harry Potter and the Half-Blood Prince (2005)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 전4권 세트 - 10점
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문학수첩북앳북스
시리즈 제7편
원제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2007)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5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마이클 조던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시카고 불스에 입단할 기회를 얻었다.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내로라 하는 프로구단에서 온 제의였기 때문에 그는 말 할 수 없이 기뻤다.


하지만 시카고까지 갈 돈이 없었다. 아직 학생이었고, 비싼 등록금도 내기 어려웠던 조던에게 비행기 표를 살 돈이 있을리 만무했다. 할 수 없이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돈을 꾸었고, 겨우 시카고행 편도 한 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간신히 시카고 공항에 내렸지만, 이번에는 팀이 연습하는 곳까지 갈 차비가 없었다. ... 생각다 못한 그는 입술을 깨물며 택시를 잡아 세웠다.


저는 마이클 조던이란 농구선수입니다. 시카고 불스에서 뛰게 됐는데 택시비가 없습니다. 태워다 주시면,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사정했다. 하지만 택시기사들은 인상이 험악한 흑인의 말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믿기는 커녕 대놓고 욕을 하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거의 자포자기할 때쯤, 택시 한 대가 미끄러지듯 그의 앞에 섰다. 조던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부탁했다. 지금은 택시비를 낼 돈이 없지만,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꼭 갚겠다고.


시카고를 위해 좋은 경기를 보여주세요. 제가 당신의 첫 번째 팬이 되겠습니다.


택시기사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하고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시카고 불스의 홈구장을 향해 핸들을 꺾었다. 그 후 시카고 불스에 입단한 조던은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나갔고, 마침내 7년 연속 득점왕과 3년 연속 MVP 선수라는 명예를 거머쥐었다. 그는 돈을 벌기 시작하자마자 신세를 졌던 택시기사를 애타게 찾았다.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제가 시카고 경제를 움직이는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를 움직이게 한 사람은, 바로 택시기사였습니다.


모든 인터뷰에서 택시기사의 얘기를 했고, 두 사람은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 [꿈 꿀 수만 있다면, 이룰 수 있다]중에서... 49페이지



조던의 첫 번째 팬이 된 택시기사. 그는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에 입단하는 결정적 순간에 다리를 놓아주며 꿈을 담은 응원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후 택시 기사는 그 사건을 잠시 잊었을지 모르지만, 조던의 가슴 속에는 신뢰의 힘이 강하게 자리잡았습니다.

택시기사 덕분에 우리는 시카고 불스의 조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공한 농구선수가 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말한 마이클 조던. 전 세계인들의 농구영웅이된 후에도 어려웠을 때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기억하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인 마이클 조던이나, 당장 자신의 수입을 포기하고 처음 보는 사람의 팬이 되기를 자처하며 진심어린 응원을 해 주는 택시기사나, 이 시대의 귀중한 보배요 진정한 드리머(Dreamers)입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 추천도서
마이클 조던과 운동화 속의 소금 - 10점
델로리스 조던 외 지음, 카디르 넬슨 그림, 나명화 옮김/상상북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5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cfactory.tistory.com 스타일스타일 2009/10/04 23:47  Addr  Edit/Del  Reply

    자신을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될 것 입니다. 꿈을 위해 또는 무언가 도전할 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를 신뢰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 Favicon of http://www.dreamcosmos.com DreamCOSMOS 2009/10/05 12:10  Addr  Edit/Del

      네, 맞습니다.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꿈을 향한 여정에서 강력한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2009/08/11 23:05 Dreamers' Lounge

 "요즘 디즈니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야? 그놈의 놀이공원인지 뭔지에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들여?"

주변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1, 2년도 아니고 몇 십년이 걸리는 일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번 돈은 죄다 디즈니랜드 건립에 쏟아 부었고, 발이 부르트도록 투자자를 찾으러 다녔다.

그리고 정확하게 20년이 지난 뒤 LA 근처에 동화속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세계 최초의 테마파크, 꿈의 동산인 디즈니랜드가 탄생했다. 많은 사람들이 디즈니랜드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정작 그는 백 퍼센트 만족할 수 없었다. 도시와 가까웠기 때문에 테마파크를 지을 수 있는 자연 공간이 부족해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플로리다에 제2의 디즈니월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다시 돈을 투자받아 이번에는 2만 7천 에이커의 땅까지 샀다. 규모로 보면 디즈니랜드의 백 배가 넘지만, 끝내 자신의 꿈을 보지 못하고 1966년 12월 15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픈식 행사는 성대하게 열렸고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명사들이 와서 참석했다.

한 지인은 오픈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는 세계 최고의 테마파크인 디즈니월드를 눈으로 보게 됐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유감스러운 일이 있어요. 이 경이로운 테마파크를 월트 디즈니 씨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디즈니의 아내는 "조금 전에 디즈니월드의 오픈을 축하하고 남편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만, 한 가지 수정할 것이 있습니다. 남편이 디즈니월드 오픈을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셨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디즈니월드를 보았습니다. 그가 보았기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 [꿈 꿀 수만 있다면, 이룰 수 있다]중에서... 24페이지


남편의 꿈을 이해하고 평생 같은 꿈을 꿔온 아내 릴리안 여사의 현명한 대답에서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그의 꿈에 대해 누구보다 선명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기에 남들이 아무리 비난하고 조롱하여도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선명히 갖고 있었기에 결국은 현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월트디즈니의 마음 속에 디즈니월드라는 꿈이 자리잡고 있지 않다면 당연히 우리는 디즈니월드를 경험하지 못했겠죠.

<월트 디즈니의 가슴 속에 선명하게 새겨진 꿈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세요.>

 꿈 꿀 수만 있다면, 이룰 수도 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월트 디즈니가 남긴 명언입니다. 그는 가슴에 선명한 꿈을 품었고, 그 꿈이 너무 뜨거워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평생을 통해 쏟아냈습니다.

"그는 디즈니월드를 보았습니다. 그가 보았기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라는 말이 제 가슴 속에 길게 남습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도서
꿈꿀 수만 있다면 이룰 수 있다 - 10점
진희정 지음/더북컴퍼니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5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주주 서한과 버핏의 각종 인터뷰를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버핏의 인생 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버핏은 자신의 성공을 운(運)으로 돌리는 겸손함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던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자신의 모든 성공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얘기한 바 있다. 대가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겸손함이라는 사실을 버핏에게서 새삼 발견하게 된다. 아울러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점도 배울 수 있다.

‘자신의 일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것이 버핏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 '워런 버핏 주주 서한에서 배우는 투자 지혜'(클릭) 중에서... 


워렌버핏은 본인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투자라는 일이 자신에게 너무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놀이처럼 즐거운 일을 본인의 업으로 삼고 있는 것이지요. 오죽 즐거우면, 무덤에 가고난 10년 후에나 은퇴할 생각이라는 말까지 했을까요?

"나는 내 일이 너무 좋아 무덤에 가서도 10년 후에 은퇴할 것이오."

그런데 사람들은 버핏의 투자 방법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버핏처럼 투자라는 '놀이'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이들은 이러한 놀이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잘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고 대가의 방법을 배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식투자로 돈을 벌기위한 목적으로만 버핏의 지혜를 배우는 사람들에겐 아쉽지만 껍데기에 불과한 지식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에겐 아마 버핏이 말한 모든 지식이 외우고 암기해야할 목록이 될지 모릅니다. 워렌 버핏의 노하우는 수많은 투자자의 방법중 한 가지 견해라고 치부될 수도 있겠지요.

위의 글을 보면 무려 220줄에 가까운 내용이지만, 정작 버핏이 우리에게 힘주어 강조하는 메시지는 마지막 단 두 문장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일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것이 버핏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역사적으로도 길이 남을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 그는 진정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사랑한 꿈을 꾸는 사람이자, 그 꿈을 이뤄온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인생을 통해 좇았기 때문에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도서 및 DVD


워렌 버핏 & 빌 게이츠 학교에 가다 - 10점
/케니앤코엔터테인먼트

(저는 몇 번이나 보았습니다. 빌게이츠, 워렌 버핏.. 이들은 유쾌하면서도 성실하게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지혜를 선사합니다.)

워렌 버핏과 함께한 점심식사 - 10점
고수유 지음/은행나무

(eBay에선 버핏과 한 끼에 몇 억 원이나 하던데.. 이 책으로 버핏에게 지혜를 얻을 수 있겠네요)
스노볼 1 - 10점
앨리스 슈뢰더 지음, 이경식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무제한적인 독점 인터뷰와 취재 지원으로 완성한 워런 버핏 유일의 공식 전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5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성공한 사업가이자 변호사였던 밀러드 풀러(Millard Fuller)는 30살의 나이에 커다란 저택과 250만 평의 토지, 호숫가의 별장과 호화로운 보트, 그리고 최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행복해 보이는 그의 삶에 위기가 닥쳐 왔다.

어느날 아내 린다가 그에게 말했다.

“나에게 과연 남편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집을 떠났다. 혼자 남은 밀러드는 너무 바빠 아내와 두 아이의 얼굴을 볼 시간도 거의 없던 지난날을 곰곰이 돌이켜 보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뛰었던 것일까? 그는 사업 때문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내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아내는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모두 털어놓았고, 두 사람은 소중한 것을 바탕으로 인생을 다시 설계하기로 굳게 약속했다. 그들은 전 재산을 교회와 대학,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수군거렸지만, 밀러드는 그때만큼 정신이 멀쩡한 적이 없었다.

1973년, 풀러 부부는 아프리카 자이르로 건너가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자이르 전역에 집을 짓는 성과를 거두자 두 사람은 자신들의 구상이 세계 어디서나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1976년 두 사람은 미국으로 돌아와 ‘국제 해비타트 협회(Habitat for Humanity International)’를 창설했다.

'천만장자의 꿈'에서 '천만명에게 집을 지어주는 꿈'으로 바꾸자 세상이 움직였습니다.

젊은날 밀러드는 천만장자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그는 천만 명에게 집을 지어주겠다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다.


‘사랑의 집짓기 운동’이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자 차츰 개인, 교회, 기업 및 각종 사회단체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국제적인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해비타트의 이념은 모든 경제, 종교, 사회, 인종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을 결속시켰다.

밀러드의 꿈은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를 움직였다. 카터는 누구보다도 열성을 다하는 참여자가 되었고, 카터와 그의 아내 로절린 여사가 작업복 차림으로 한낮의 뙤약볕 아래서 땀흘려 일하는 것이 보도되자 해비타트는 더욱 유명해 졌다.

불량주택을 없애는 것이 우리의 꿈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앞길에 놓여 있는 숱한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차근차근, 한 번에 한 채씩 집을 짓다 보면,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밀러드는 이렇게 소박한 꿈을 표현하고 있다. 국제 해비타트는 지금까지 이 운동으로 600여개 도시에서 집을 지었으며, 현재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스리랑카 등 쓰나미 피해 국가에 총 35,000 가구를 지어주고 있다.

- [18세, 네 꿈을 경영하라]중에서… 일부 내용을 재구성 하였습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도서
18세, 네 꿈을 경영하라 - 8점
이채윤 지음/청어람(뿔)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2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이 있었다. 그는 어릴적부터 신문팔이, 점원, 기계공 등의 일을 하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언젠가 자동차를 만들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

16살이 되던 해 드디어 그는 꿈에도 그리던 ‘미시간 차량회사’라는 기계 제작소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일주일 만에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아무도 고치지 못한 기계를 그가 30분 만에 고친 것이 그 이유였다.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봐 겁이 난 공장장이 그를 쫓아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기 인생의 고비마다 최선을 다했다. 이후 그는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기술을 익혔고, 드디어 뛰어난 기술자가 되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그는 ‘부자들의 장난감인 자동차를 서민들의 생필품으로 바꾸겠다’는 신념으로 1903년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다. 그가 바로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이다.

T모델 앞에서... 헨리 포드 ( Henry Ford, 1863-1947, 미국 )

헨리 포드는 대학 졸업장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포드를 만들었고, 근대적 대량생산 방식에 의하여 자동차를 대중화시키면서 자동차 왕이 되었다.

그는 컨베이어 시스템을 통해 1공정에 18분이 걸리던 제조시간을 5분으로 단축했다. 그리하여 다른 자동차 회사들이 만든 차가 2천 달러를 호가할때, 포드 T형의 값을 260달러로 낮출 수 있었다. 이렇게 T형 자동차는 보통사람들의 필수품이 되기 시작하면서 단종될 때까지 1500만 대나 팔려 나갔고, 거대한 미국 경제의 밑받침이 되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매사에 매달리게 되면 인생에는 언제든지 역전의 찬스가 온다. 바로 헨리 포드가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만든 사람이다. 그는 기계공으로 힘든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항상 자신이 만들 자동차 회사를 열심히 설계했다. 그 꿈이 있었기에 포드는 ‘자동차 왕’이 될 수 있었다.

- [18세, 네 꿈을 경영하라]중에서… 내용을 일부 재구성하였습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도서
18세, 네 꿈을 경영하라 - 8점
이채윤 지음/청어람(뿔)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2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는 매일 아침, 오늘 할 일에 너무나 설레어서 아침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다”라고 말한 영화감독이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꿈을 이루었을까요?

스필버그가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열두 살 때였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8밀리 코닥 무비카메라를 선물했는데, 그 카메라는 곧 스필버그의 것이 되어 버렸다. 그는 가족의 전속 카메라맨이 되어 많은 장면들을 찍었다. 그때부터 영화에 빠져들어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 장면을 그려보곤 했다. 그는 부모님과 세 여동생을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키는 것을 몹시 좋아했다.

소년 스필버그는 그때부터 학교 다니기가 몹시 싫었다고 한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그에게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학, 수학, 외국어 등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의 학과 점수는 형편없었고, 체육은 고교 3년 내내 낙제였다.

그는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를 피하기 위해 더욱더 영화에 매달렸고 촬영한 필름을 편집한다는 핑계로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아예 학교를 나가지 않으려고 꾀병을 부렸다.

젊은 시절의 Steven Spielberg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필버그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인 ‘롱비치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그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마치 자기 집처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회사 직원인 양 양복을 차려입고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들어가 촬영 장면들을 참관했고, 심지어 영화 관계자와 친분까지 맺었다.

그러던 중 그는 TV제작자인 사인버그를 만나 자신이 만든 영화 ‘앰블린’을 보여주었는데 그가 그 작품을 높게 평가해 정식 계약을 요청해 왔다. 스필버그가 아직 학생이란 것을 알고 그가 말했다.

“자네는 대학을 꼭 졸업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내가 영화감독의 길을 가르쳐 주지.”

이 제의를 받은 스필버그는 1주일 동안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가 대학을 포기하고 영화를 선택했다.

그후 그는 ‘유니버셜’에 입사해서 3년간 TV드라마를 기획하면서 영화감독 수업을 했다. 남들이 대학 공부를 하는 동안 현장에서 자기 분야를 확실하게 공부하고 실력을 다진 그는 수많은 영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는 ‘조스’, ‘ET’의 성공으로 엔터테인먼트의 기린아로 떠올랐고 연이어 발표한 ‘쥬라기 공원’ 한 편으로 8억 5천만 달러의 이익을 남겼다. 스필버그는 흥행에만 앞서는 감독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아이디어와 기술력, 대중이 선호하는 취향을 제대로 읽고, 여러 장르의 영화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영상세계를 주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다.

- [18세, 네 꿈을 경영하라]중에서…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도서
18세, 네 꿈을 경영하라 - 8점
이채윤 지음/청어람(뿔)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2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여기 한국에서 연기자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이민을 준비했던 한 배우가 있다.

남들보다 열 배 이상의 노력을 들이면서도, 얼굴이 안 된다 혹은 왠지 배우로서 잘 안풀릴 것 같다 등등의 평을 받으며 단역에만 그치기를 수년째… 그나마 영화에 섭외되었으나, 촬영이 중도에서 취소된 것도 여러번. 그 중에는 90%까지 촬영을 마쳤는데도 펑크가 난 적도 있었다.

연기자로서 외모에 대한 차별은 누구나 겪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섭외된 영화에서 주인공인 자신으로 인해 흥행이 힘들것 같다며 촬영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해당 배우에게는 죽기보다 힘든 고통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오죽 서러웠으면, 그때를 잠시 회상한 것만으로도 눈물을 지을까?
<오죽 서러웠으면, 그때를 잠시 회상한 것만으로도 눈물을 지을까?>

이쯤되면 본인의 꿈에 대한 회의가 들 수 있을 것이고 그는 이민을 결심했다.

그런데, 역시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고 했던가?
우리가 다 아는것 처럼, 그는 ‘성웅 이순신’이 되어 삶에 지치고 고단했던 우리 국민들 앞에 돌아왔다.
또한  이순신 같이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오히려 시청자에게 고정관념이 생겨서 연기의 폭을 좁히게 된다는 주변의 우려를 하얀거탑의 ‘장준혁’으로, 베토벤바이러스의 ‘강마에’로 말끔하게 날려버렸다.

<
위 드라마를 보면 김명민이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강마에, 장준혁, 이순신이 떠오르시나요?>

MBC스페셜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연기라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절실한 꿈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가?

그와 함께 촬영을 했던 PD, 스탭, 동료 연기자가 공통적으로 꼽는 것은 ‘성실성’이다. 아니, ‘지독한 성실성’이다. 오죽하면 ‘배우로서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극찬을 할까?

실제로 그가 찍은 작품들을 보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그는 연기를 한다. 아니 해당 인물이 되어 그를 보여준다. 위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스타이기보다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김명민, 각종 시상식의 상을 휩쓸고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며, 이제 ‘스타’라고 불리어도 좋을 그이지만 지금도 극구 ‘스타’이기를 거부하며 연기에 최선을 다하는 배우이기를 고집한다.

배우의 본질은 연기(꿈)이고, 그 열매는 대중의 인기(성공)이다. 그런 면에서 배우 김명민은 성공 이전에 본인의 꿈을 갈망하는 이시대의 귀중한 보배이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 DVD
불멸의 이순신 전편보급판 박스세트 (12DISC) - 10점
김정규 외 감독, 김명민 외 출연/KBS 미디어
절대적인 리더십을 보여준 이순신. 성웅 이순신... 용기를 잃을때 많은 힘이 됩니다.



하얀거탑 감독판 박스세트 (8disc) - 10점
안판석 감독, 송선미 외 출연/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베토벤 바이러스 박스세트 (7disc) - 10점
이재규 감독, 김명민 외 출연/MBC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2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 소녀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맨해튼의 어느 컴퓨터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그녀는, 직장동료들과 우연히 찾은 당구장에서 온몸을 싸고도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기분이랄까. 이거야말로 내 운명이구나 싶었던 그녀는, 최고의 당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장 그날부터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과 과감하게 이별하고 포켓볼 연습에 몰입했다. 하루 10시간 이상 당구대에 붙어살며 새벽 2~3시까지 미친 듯이 연습했고, 큐를 잡은 손가락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테이프를 손에 감고 생활하기도 했다. 37시간 연속 플레이를 하고 쓰러져 1주일간 앓아 누운 일도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당구를 먹고 마시며 호흡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커다란 핸디캡이 있었다. 바로 선천성 척추측곡(척추가 옆으로 휘는 병)이었다. 그녀는 열두살때 휘어진 척추를 바로잡는 대수술을 받았다. 척추를 조각내서 다시 붙이고 거기에 금속막대를 이식하는 수술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그후 몸을 굽힐 때마다 찾아오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 무려 여덟번이나 척추 교정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통증이 심했지만, 그녀는 밤새 당구연습을 했고 당구장에서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데다 신체적인 약점가지 안고 있었으니 그녀가 다른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연습’뿐이었다.

“처음 당구를 쳤을 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죠. 처음으로 큐를 잡고 당구공을 친 순간, ‘최고의 당구 선수가 되어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구가 내 삶의 일부이고, 내 나머지 삶이 되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어요.”

저는 척추에 금속막대가 박혔는지도 몰랐었네요..

그녀가 바로 ‘검은 독거미’로 불리는 재미교포 2세 여자 당구선수 자넷 리(Jeanette Lee)다. 자넷 리는 1993년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여자프로당구 세계랭킹 8위에 올랐고, 1994년에는 여자프로당구협회(WPBA) 챔피언을 차지하며 랭킹 1위에 올랐다. 1995년에는 열 두번의 세계대회 중 다섯 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지켰다. 큐를 잡은지 불과 5년 만의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아직도 하루에 4시간 이상 당구대 앞에서 보낸다. 하루도 연습을 쉬는 날이 없다. 몸속에 박힌 금속막대는 여전히 그녀에게 고통을 주고있고, 정기적으로 의사의 처방과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온 건 내가 들고 있는 이 큐와 내 몸 속에 있는 또 다른 큐, 금속막대였어요”라고 말이다. 큐는 그녀의 숙명적인 키워드였던 것이다.

척추측곡이라는 중대한 핸디캡을 가진 그녀가 처음 당구에 입문할 때만 해도 정상에 오를 가능성은 그야말로 희박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능성을 따지기보다는 그저 맹렬하게 앞으로 전진했다. 강한 승부근성과 누구도 꺾지 못하는 고집, 뜨거운 열정과 뛰어난 재능으로 그녀는 세계 포켓볼 1인자, 122게인 연속 퍼펙트를 기록하기도 한 포켓볼의 마술사가 된 것이다.

- 출처: [가슴 뛰는 삶] 강헌구 지음.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도서
가슴 뛰는 삶 - 10점
강헌구 지음/쌤앤파커스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20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ooji4u.com 한수지 2009/11/06 12:25  Addr  Edit/Del  Reply

    자넷리의 경기를 많이 보았는데ㅐ..
    요즘은 잘 못봤네요..
    미간의 주름이... ㅎㅎㅎ
    좋은 글, 마음으로 읽고 갑니다
    오늘도 향기로운 하루가 되시길... *^^*

    • Favicon of http://www.dreamcosmos.com DreamCOSMOS 2009/11/07 00:14  Addr  Edit/Del

      요즘은 포켓볼에도 도전하여 케이블 방송에 종종 나오기도 한답니다.
      시간이 흘러도 큐를 손에서 놓지 않는 그녀를 보며, 그녀가 당구를 얼마나 좋아하며 즐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한수지님께서 난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겠죠?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음악을 매우 좋아합니다. 특히 퀸(Queen)의 노래는 제게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존 디콘의 베이스, 로저 테일러의 드럼까지 완벽한 조화와 화음은 아무리 여러번 들어도 질리게 하지 않습니다.

퀸의 노래는 대부분 좋아하지만,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s’, ‘Don’t stop me now’, ‘I was born to love you’는 퀸 특유의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느끼며 가끔 부르기도 합니다.

비록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는 세상을 떠났지만, 퀸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극장에서 국내 처음으로 퀸의 실제 콘서트 장면이 담긴 라이브 공연 실황이 개봉된다는 사실이 퀸의 존재감을 입증합니다.

역시 꿈과 열정을 노래한 그룹, Queen.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아니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음악의 챔피언입니다.

꿈을 노래한 밴드, Queen. 그들의 열정을 느껴보세요~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 DVD
[블루레이] Queen - Rock Montreal & Live Aid - 10점
Queen 감독/기타 (DVD)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1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용석킴 2009/09/01 13:20  Addr  Edit/Del  Reply

    저도 Queen을 참 좋아 합니다. 비록 Gay라는 오명을 받았었지만...
    음악성과 그의 성공을 시기하는 자들의 음해라고 생각 합니다.
    Queen에 I was born to you 잘 듣고 갑니다.
    오늘 대학원 첫 수업인데, 노래 덕분에 활기차게 학교로 발걸음 옮김니다.
    ^^

  2. Favicon of http://www.dreamcosmos.com DreamCOSMOS 2009/09/01 22:24  Addr  Edit/Del  Reply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사는 모습을 보면, 나역시 기분이 좋군요~^^ 졸업후 펼쳐질 드넓은 당신의 무대가 벌써부터 설레네요... 파이팅!!!

2009/08/06 20:15 Dreamers' Lounge

1971년, 난 하워드라는 50대 남성을 만났다. 그는 항공기 제조 회사인 보잉사에서 오랫동안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막 실직한 상태였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하워드는 대답했다.

“비행기 조종을 해 보는게 오랜 꿈이었어요.”

“그럼 배워보지 않고요.”

“제 나이 벌써 쉰 둘입니다. 너무 늦었어요. 면허를 딸 돈도 없고 나이도 계속 먹고 있잖아요. 뭣보다 아내가 반대합니다. 사고라도 내면 어쩌냐고요.”

“언제부터 비행기 조종에 관심이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경비행기를 많이 좋아했어요. 비행기를 보고 있기만 해도 좋았죠. 조종만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거예요.”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배우지 않았나요? 그렇게 오랫동안 미루다니, 배울 수 없다는 핑계를 40년 동안이나 대고 있었던 겁니다!”

하워드는 고개를 숙이더니 벌써부터 패배자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이렇게 물어 보았다.

“조종을 배우는데 얼마나 드는지 아세요?”

“아니오. 알아보지 않아서 잘 몰라요.”

“10센트 듭니다.”

“설마요. 농담이시죠?”

하워드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그 10센트로 첫 발을 내딛는 겁니다. 저기 있는 공중전화기로 우선 클립머피 비행학교에 전화를 거세요. 전화번호를 찾으면 있을 거에요. 클립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신이 비행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사실 그대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워드는 내 말대로 전화를 걸어 클립에게 자신이 어릴때부터 얼마나 비행기를 좋아했는지 얘기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클립이 하워드에게 비행장까지 오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지금 당장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번 시험삼아 타보지 않겠어요?”

클립은 비행기에 대한 하워드의 정열을 높이 산 듯했다.

<출처: 선명한 사진. 네이버 카페>

6개월 후, 하워드는 단독 비행에 성공했다. 수업료는 하워드가 다시 직장을 구하면 나눠서 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하워드는 하고 싶은 일을 더 이상 미루지 않아도 되었다. 그후 하워드는 비행장에서 일자리를 구해 클립에게 수업료를 갚아 나갔다.

하워드가 꿈을 실현하는 데 필요했던 것은 단돈 10센트였다. 이렇게 작더라도 첫 걸음을 내딛고 나면 길은 자연히 열린다.

-출처: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라]중에서…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도서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라 - 10점
마이크 맥매너스 지음, 인트랜스 번역원 옮김/시대의창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1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951년 홍콩의 한 빈민가에서 태어난 소년이 있었다. 중학교 졸업 후 집안이 어려워 고교 진학도 포기한 채 조선소에서 일했다. 거기서 고생하며 번 돈으로 전문대에 들어가 건축을 배웠다. 밤에는 유럽계 인테리어 회사에서 견습생으로 일했다. 그는 현대적 디자인이 배어 있는 가구를 보며 디자인 세계에 매혹됐다. 반드시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리라 결심했다.

1972년 스물한 살의 이 홍콩 청년은 무작정 로마행 편도 항공권을 끊었다. 그의 이름은 핑키 라이(Pinky Lai), 현재 포르쉐의 수석디자이너다. 박스터, 카이맨, 911 등 현행 포르쉐 모델 대부분이 그의 손길을 거쳐 세상에 태어났다.

“디자인은 제게 일이 아닙니다. 취미이고 삶이고 모든 것이지요. 당신이 어떤 분야에 얼마나 열정을 쏟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온종일 말이에요. 밥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 출처: 조선일보. 2006.10.22

사진출처: 글로벌오토뉴스
<사진출처: 글로벌 오토뉴스>

저의 드림카는 바로 ‘포르쉐(Porsche)’입니다. 예전엔 많이 보지 못했지만, 요즘 서울 시내에서 가끔 지나가는 포르쉐를 보면 마음이 두근두근 거리곤 한답니다.

그런데 제 드림(Dream)카를 만든 수석디자이너가 홍콩 빈민가 출신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독일차, 그것도 세계 최고의 양산 스포츠카를 만드는 포르쉐에서 당당히 수석디자이너를 하고 있는 그를 보며, 그의 꿈(Dream)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어렴풋이 느껴봅니다. 역시 꿈을 이루는 데는 출신도 배경도 장애물이 될 수 없습니다.

핑키 라이, 제가 포르쉐(Pinky Lai)를 구매할 때까지 꿈(Dream)을 잃지 말고 제 드림(Dream)카를 계속 디자인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응원합니다.

제 드림카입니다. 이 차를 타고 사랑하는 제 아내와 피레네 산맥을 넘을 것입니다.


Henry C. Shin

Copyright Ⓒ DreamCOSMOS. All rights reserved




DreamCOSMOS의 추천도서
공병호 인생의 기술 - 6점
공병호 지음/해냄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eamCOSMOS

Trackback http://www.dreamcosmos.com/trackback/1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